[문화 칼럼/구보경]패션미술, 21세기 예술의 매혹적 흐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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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을 통해 드러난 미술적 아름다움, 미술의 영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패션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앙드레 말로가 저서 ‘상상의 미술관’에서 벽이 없는 미술관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제시한 때가 이미 반세기를 훌쩍 넘었다. 말로는 문화비평적 시각에서 이 미술관에 대해 예술작품을 소장, 전시하는 곳이라는 기능을 부인하면서 삶과 예술을 구분하는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오늘날 미술관의 기능을 예견했다.

일상-예술의 결합, 미술관 패션쇼

미술품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공간으로서 국가의 문화경쟁력을 상징하는 미술관은 동시대 예술의 흐름뿐만 아니라 인터넷 테크놀로지 디자인과 상업의 영역을 아우르는 다목적 복합 문화매개자로 역할을 한다. 아트마케팅, 명품 브랜드의 문화 지원 아래 미술관은 기업의 신제품 발표, 시사회 및 각종 문화예술 행사의 장소로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예술성과 상업성의 경계를 허물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확장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으니 바로 패션과 미술의 결합이다. 미술관에서의 패션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구두 마스크 액세서리 의복 등 패션 아이템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를 통해서 어느덧 패션미술이라는 예술 트렌드를 개척하고 있다.

패션은 유혹과 매혹의 상징적 도구이기도 하지만 살아서 움직이는 역동적인 미술이다. 역사적으로 패션은 회화나 조각 같은 미술작품에 못지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패션에 나타난 당시 풍습과 문화, 화려함을 통해 그 시대의 예술양식과 미의식을 파악할 수 있다.

미국패션의 아이콘으로 대표되는 랠프 로런은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서 여러 번 패션쇼와 회고전을 열었다. 인상파 그림 속의 여인과 랠프 로런의 옷을 입은 모델을 나란히 보면서 전시장을 찾은 관객은 시간과 공간. 예술의 장르를 넘어 복합적인 미적 체험을 한다. 지난해 루이뷔통은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한국작가 10명을 선정해 변형(Metamorphose)이라는 기획전을 본사 갤러리인 에스파스 루이뷔통에서 선보였다. 장소의 특수성 때문인지 참여 작가들의 우수성과 탁월한 기획력 덕분이었는지 전시에 대한 관심이 꽤 높았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1월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 예정지에서 국내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과 미술의 만남’ 패션쇼가 개최됐다. 7월에는 경기도 미술관에서 패션디자이너와 미술가들이 직접 참여한 패션쇼인 ‘패션의 윤리학’이 열렸다. ‘패션과 미술의 이유 있는 수다’ 전시 역시 일반인의 관심을 끌었다. 패션이라는 대중예술의 콘텐츠가 미술 공간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이유 있는 수다를 사람들은 듣고 싶어 했다.

소통의 다리 이을 전문인 활약 기대

일반적으로 현대 미술작가의 작품이나 삶은 일상의 수다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는 미술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전시장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현대작가의 작품은 생경한 ‘날것’의 느낌일 때가 많다.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창작한 작품이지만 낯설고 불편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아예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포기할 때가 있다. 하지만 미술이라는 울타리 속 패션은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순수예술에 대한 경계나 부담이 없이 작품에 다가가고 참여할 수 있게 하므로 참 멋지게 느껴진다.

패션디자이너의 의상을 통해 드러나는 미술양식을 살펴보는 차원을 넘어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전시 공간에서 패션과의 만남은 일반인들에게 패션쇼와 미술전시를 동시에 경험할 기회를 준다. 새로운 장르로서 패션미술의 개념은 패션과 미술이라는 장르를 구별하고 통합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모습과 활성화된 가치체계의 미학적 표현을 시도하는 적극성과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 일상생활의 미학, 현실과 예술 간의 새로운 관계설정, 스타일 또는 장르의 해체와 융합 등 미술영역의 확장이나 패션산업과의 소통은 오늘날 일반인에게 예술을 한층 더 친숙하게 만든다. 세상은 빨리 변한다. 동시에 우리가 관념적으로 지니고 있는 영역과 영역 사이의 경계도 그만큼 빨리 허물어지고 있다. 패션과 미술이 산업과 연계해 부가가치 상품으로 거듭나는 동시에 패션미술이라는 21세기형 예술의 흐름이 미술현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 즈음에서 미술과 패션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전방위 패션미술 전문인들의 역할에 관심이 모인다.

예술가의 영역에서 영혼의 자유로움을 한껏 발휘하는 패션미술가, 예술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인정하면서 패션과 미술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예술 흐름을 대중들에게 소통시켜주는 패션전문 큐레이터, 미술 전시장에서 활약하는 디자이너, 비평적 시각을 갖춘 패션미술 문화기획자 등이다. 패션의 세계와 미술의 현장을 넘나드는 감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이들 21세기형 리더의 활약이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

구보경 서울디지털대 패션미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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