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국 의회 1席의 무거운 의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제 건강보험개혁법안을 공화당의 지지까지 받을 수 있도록 수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매사추세츠 주 연방 상원의원 특별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이 공화당에 패배한 직후다. 법안에 강력하게 반대하던 공화당을 제쳐놓고 민주당(58석)과 무소속(2명) 의원들을 설득해 처리하겠다던 그동안의 자세를 바꾼 것이다. 이번 선거 패배로 공화당의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받지 않고 토론을 종결해 법안을 의결할 수 있는 ‘압도적 다수’인 60석 가운데 1석을 잃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에서 1석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상원 의석 1석의 상실로 오바마 대통령은 건강보험개혁법안뿐 아니라 구제금융을 회수하기 위해 월가에 세금을 부과하는 문제나 일자리 창출, 재정적자 개혁 문제 같은 주요 국정 현안에서 공화당의 협조를 얻지 않고는 정책 추진이 어렵게 됐다. 불과 의석 한 자리가 세계의 지도국이라는 미국 정치의 진운(進運)을 좌우할 만큼 의미가 무겁다. 공화당은 비록 소수당이지만 해머와 농성이 아니라, 필리버스터라는 제도화된 절차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의 독주를 저지할 수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의회를 운영하지만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수 있는 의석(전체의 60%)에 1석 미달하게 됨으로써 소수당과의 타협을 통한 의안 통과를 꾀하는 것이다.

그제 경기 성남시의회에서 민주·민노·국민참여당 등 야당 의원 10여 명은 다수당인 한나라당(20석)의 ‘성남·광주·하남시 통합찬성안’ 처리를 막겠다며 서로 몸을 쇠사슬로 묶고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했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예결위 회의장에 돗자리를 깔고 며칠씩 밤을 새우며 예산안 심의를 물리적으로 방해하고, 국회의장은 의장석을 뺏기지 않기 위해 ‘의장석 사수 농성’을 벌였다. 이처럼 한국에선 여당이 아무리 의석이 많더라도 폭력을 동원한 소수 야당에 번번이 발목을 잡힌다. 국민이 만들어준 의석수보다 물리력이 우선하는 ‘민주주의의 실종’ 현장이다.

9선 의원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표결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늘 아래 없는 국회다”라고 개탄할 만하다. 의석 한 석의 무거운 의미를 헤아리는 국회라야 폭력을 동원한 소수의 횡포를 막고 타협과 대화의 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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