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중순]검은 얼굴 金이병의 반가운 “충성”

  • Array
  • 입력 2010년 1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내가 미국 테네시대에 교수로 1971년 부임하면서 운전면허증을 발급 받을 때이다. 면허증의 인종(race) 표시 난에 O로 쓰여 있었다. 동료인 파키스탄 출신 교수의 면허증에는 W라고 쓰여 있었다. 발급직원에게 W의 뜻을 물어보았더니 화이트(White)의 약자라고 설명했다. 파키스탄 교수는 인도 원주민인 드라비디안(Dravidian) 출신이기 때문에 피부색이 미국 흑인보다 오히려 더 짙었다. 그 직원에게 “혹 색맹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분류표에 그렇게 돼있다고 했다.

피부색 따른 병역차별 철폐 환영

내 면허증의 O는 오리엔탈(Oriental)을 뜻하는 줄 알았는데 기타(Others)라는 뜻의 약자였음을 알았다. 나는 흑도 백도 아니었다. 이런 인종구분법은 과학적인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의적이고 주관적이라서 테네시 주는 운전면허증에 인종 구분을 표시하는 난을 나중에 삭제했다. 늦었어도 바르게 고치는 것이 옳다(better late than never)는 설명과 함께.

병역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명백한 다문화가정 출신’은 제2국민병으로 분류되어 병역이 면제되거나 본인이 희망할 때만 현역병으로 입대할 수 있었다. 내년 1월부터 시행하는 새 병역법에 따르면 명백한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도 징병검사 판정 결과에 따라 현역이나 보충역(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병무청은 다문화가정 출신끼리의 동반 입대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야말로 늦었어도 바르게 고치는 것이 옳다는 경우에 해당한다. 새 법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우선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가 중요한 담론으로 대두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2007년에 프로미식축구 선수인 하인스 워드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정부와 여야 국회의원이 다문화가정 출신의 자녀를 차별하는 관행을 제도적으로 방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는데 비로소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개정안을 시행하기 전에 군 당국은 앞으로 입대할 다문화가정 출신에게 공정한 처우를 하기 위한 배려를 해야 한다. 다문화가정 출신 장병과 잘 어울리도록 세심한 준비를 해야 한다. 피부색과 관계없이 모두가 한국인이자 자랑스러운 장병임을 느낄 수 있을 때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이라는 생각이 모두에게 자리 잡을 것이다. 다문화가정 출신이 군 생활을 통해 애국심을 느낀다면 진정한 한국인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정안이 다문화 정착의 중요한 시험대나 마찬가지다.

피부색이 확연히 드러난다는 이유만으로 다문화가정 출신을 차별하는 일은 옳지 않다. 다문화가정의 포용은 도의적으로나 실리적으로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 한국이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나라인데 다문화가정은 출산율의 저하를 막는 데도 기여하지 않는가. 인구 감소로 현 수준의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우리 국민인 다문화가정 출신을 배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임진왜란 때, 우리는 심지어 적군 출신인 사야가를 영입해서 전공을 세우도록 했다. 그가 모하당집을 남긴 김충선이다.

애국심 갖도록 軍友의 배려 있어야

병역법 개정안을 시행하기 위해 세부적인 지침을 마련하기 바란다. 기존 장병에 대한 교육과 당부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혼혈이라는 용어부터 없애도록 해야 한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2008년에 이런 용어를 사용하지 말기를 권고했고, 우리도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다문화가 말과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뿌리를 내릴 때 한국인과 한국사회는 한층 더 성숙할 수 있다. 국격을 높인다 함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김중순 한국디지털대 총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