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등록금 상한제, 취업 후 상환제와 연계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3일 03시 00분


여야가 도입하려는 대학 등록금 상한제를 놓고 대학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는 어제 긴급총회를 갖고 “법으로 등록금 인상을 규제하는 것은 대학의 자율성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전국 국공립대총장협의회도 그제 “대학 재정에 대한 정부 지원의 개선 없이 등록금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은 대학 선진화와 자율화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등록금 상한제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를 놓고 여야가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대두됐다. 민주당의 반대로 ICL 법안 처리가 표류해 올해 1학기 시행이 불가능해지면서 여론의 비판이 빗발치자 여야가 다시 머리를 맞댔지만 민주당은 ICL 법안 처리와 등록금 상한제 도입의 연계를 요구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작년 말 등록금 상한제와 ICL 법안을 같이 논의해 처리한다는 데 합의했다.

등록금 상한제는 대학 등록금의 인상을 물가상승률과 연동해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어서 ICL 법안 처리와 연계해 다룰 일이 아니다. 정부가 등록금을 통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대학교육의 경쟁력 저하 등 상당한 후유증이 우려되는 반(反)시장적 교육정책이다. 일반상품도 가격통제를 하면 질이 떨어지거나 양이 줄고 암거래가 성행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우리나라는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 지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평균치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빈약한데, 대학 등록금 상한제까지 두면 무슨 수로 세계 바닥권인 대학경쟁력을 끌어올린단 말인가. 등록금 상한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ICL도 안 된다는 야당의 물귀신 작전은 옳지 않다.

ICL 역시 학비 마련이 어려운 C학점 이상의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걱정 없이 공부하게 해준다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대학생 90.5%가 C학점 이상을 받을 만큼 학점 인플레가 심하다. 정부가 빚을 내 모든 대학생에게 등록금을 대준 뒤, 나중에 소득(2009년 기준 4인 가족 최저생계비 연 1592만 원 이상)이 생기면 갚으라는 설계로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조장할 수 있다. 이 제도 운영으로 연 1조8000억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연구도 있다. 정부는 다음 정권에 부담을 안길 것이 아니라 꼼꼼하게 보완한 뒤 시행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부실 대학교육과 부실 대학생 양산을 부채질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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