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원호]개발원조, 한국 성공경험 나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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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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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복구사업은 마셜 플랜에 의해 성공적으로 이행됐다. 미국이 국민총생산(GNP)의 3%를 투입한 덕분이었다. 저개발국가에도 자본을 투입하면 유럽처럼 부흥할 것으로 미국과 국제연합(UN)은 믿었다. 이런 인식 아래 유엔이 1960년대를 제1차 개발연대로 발표하면서 개발협력이 본격화됐다. 비슷한 시기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아시아개발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 유럽개발기금 등 개발관련 국제기구가 설립되면서 국제적 차원에서 개발협력체제가 구축됐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사회는 저개발국가의 발전을 위해 약 3조 달러를 투입했다. 그러나 대다수 개도국은 답보상태에 머물거나 일부 개도국은 1960년대에 비해 오히려 퇴보했다. 개도국은 1970년대에는 빚의 덫에 걸렸고 198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보냈다. 1990년대에는 세계화 과정에서 제외되면서 저개발을 숙명론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국제사회는 개도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2000년에 설정했다. 아울러 원조의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한 고위급 회의를 개최해 로마선언(2003)과 파리선언(2005)을 채택했다.

개발원조의 효과는 왜 미미했는가. 우선 개도국 자체의 문제다. 개발의 목적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정신적 물질적 삶에 대한 선택의 범위를 넓히는 데 있다. 개도국 위정자에게 국민의 선택 범위의 확대는 정치적 사회적 불안을 의미했기 때문에 이들은 자국의 사회적 기대 수준을 미래의 비전이 아닌 과거의 영광에 정략적으로 맞췄다. 그리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선진국의 원조 동기도 개도국의 경제발전과 거리가 멀었다. 대외원조 동기는 자국의 국익, 외교적 편의, 세계 리더로서의 위상 구축에 있다. 개도국의 실질적 경제사회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본이나 독일을 예로 들어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려고 두 나라는 원조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우군을 만들려 했다. 미국의 원조목적은 정치 외교 군사적 영향력을 통한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할 추구다.

다시 말해 원조 공여국의 동기는 저개발국가와의 개발협력이라는 가치와 부합하지 않았다.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의 개발협력 정책도 개도국의 현실을 간과하고 행정위주의 컨설턴트에 비중을 둠으로써 현실성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개발원조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전쟁을 치르면서 가난을 맛보았지만 21세기에는 번영의 길로 들어섰다. 저개발 상태에서 국제사회의 원조를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이는 한국의 개발협력이 가진 역사적 경험과 지식이 다른 개도국의 눈에서 보면 유용함을 뜻한다. 개도국이던 나라가 DAC에 가입한 사실은 획기적 사건이다. 개도국은 저개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일종의 숙명론을 바꾸는 역사적인 일이다.

이제 한국은 개발에 대한 기대를 개도국이 높이도록 지혜를 함께 나눠야 한다. 개도국으로서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다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한 경험을 살려 개발협력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틀을 국제사회에 보여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가 환경 인권 안보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안으로는 젊은 세대가 전 세계를 품도록 안목과 지평을 넓혀야 한다.

조원호 한국국제개발협력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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