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소연]나눔은 당연하고 기쁜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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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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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쯤 전, 내가 10일간 머물렀던 우주정거장은 지상으로부터 약 400km 높이에서 지구 주위를 돈다. 한 바퀴를 도는 데 90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우주정거장이 어느 상공을 비행하는지를 러시아 서비스모듈에 놓여 있는 랩톱 컴퓨터 중 하나가 나라 이름을 부르며 알려줬다. 10분 넘게 반복해서 불려지는 러시아 중국 미국 같은 나라가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름을 듣자마자 창으로 날아가 내려다보아도 파랗고 넓은 태평양만 보기 일쑤였던 것을 기억한다.

태어나기 전 엄마 배 속에서 어느 나라,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겠다고 선택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는 20분가량 우주정거장이 그 상공을 비행하는 커다란 나라에서 태어나고, 누군가는 가끔은 지나쳐 버려 이름도 불리지 못하는 작은 나라에 태어난다.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저체온증과 기아를 겪어야 하는 힘든 환경에서 태어나고 누군가는 총알이 빗발치는 사선에서 태어난다. 결국 태어나서 살게 되는 환경이 참 불공평하게 결정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제 60억 명을 넘어 70억 명이 다 되어 가는 인구 중에 이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대강 계산해도 로또에 당첨될 확률에 비할 만했다. 결국 넓은 지구에서 대한민국에 태어날 때, 나는 복불복 게임에서 아주 운이 좋게 괜찮은 결과를 얻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그런 행운을 얻은 사실조차도 모른 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주변 환경이나 국가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던 나였다. 정말이지 우주에서 지구, 그리고 그중 대한민국을 바라보던 그때는, 30년 가까운 과거를 반성하는 동시에 내가 감사해야 할 점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건 행운

잠시 후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럼 난 왜 그런 높은 확률을 뚫고 대한민국에 태어났을까.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께서 반 전체 학생에게 무언가를 나눠주려고 하실 때면 그것은 반장에게 전달될 때가 많다. 선생님께서 구태여 말씀하시지 않아도 반장은 받아듦과 동시에 모두에게 나눠주라는 뜻임을 안다.

엄마가 동생과 함께 나눠먹으라고 말씀하지 않아도 내게 귤이 담긴 봉지를 주시면 난 그것이 동생과 함께 나눠먹으라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큰누나, 언니로서 자격 미달인 나 때문에 셋이 싸운 적도 있었지만 항상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아 같이 맛있게 나눠먹었던 것처럼 말이다. 학급의 반장이, 3남매의 맏이로서 내가 무언가를 받아 들었을 때 나머지 학생, 동생과 나누는 게 칭찬받을 일이라기보다는 당연한 의무처럼, 무언가를 많이 건네받았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과 나누라는 의미를 내포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작년 이맘때쯤 우연한 기회로 케냐에서 온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공연 중 설명을 통해 안 사실은, 그 아이들은 케냐의 빈민촌 쓰레기 더미에 버려지거나 쓰레기 더미에 의지해 생활을 영위하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점이었다. 이 아이들도 선택의 여지없이 태어났다. 그때 지휘자 선생님께서 한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시며 꿈이 무어냐고 물었다. 대부분은 배부르게 먹는 일, 내년에 또 한국에서 공연을 하는 일인 데 비해, 이 아이는 하늘을 나는 파일럿이 되는 게 꿈이라고 대답했다고 하시며 대견해하셨다.

대한민국에서 우주인을 꿈꿨던 나와, 쓰레기 더미와 함께하는 힘든 삶 속에서 파일럿을 꿈꾸는 친구를 생각하면서 과연 내가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하늘을 나는 파일럿을 꿈꿀 수 있을까 생각하니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졌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는 그 친구의 학비를 지원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가끔은 편지를 받는데,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은 오히려 내가 힘들 때 너무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가끔은 그 친구가 나를 지원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파일럿 꿈꾸는 케냐 어린이

선택의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것을 받은 누군가가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과 나누는 건 칭찬받을 일이기보다는 꼭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분 덕분에 나 또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그렇게 받은 것을 나누기 위해 나름은 노력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나를 종종 발견한다.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국민 평균 생활수준을 10단계로 구분해서 색칠한 지도를 본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는 당당히 최상위 단계의 색깔이 칠해져 있었다. 결국 엄청난 행운으로 대한민국에 태어난 우리 모두는 그만큼 나눠야 하는 의무도 동시에 갖게 된 것이고, 그것은 학급의 반장으로 선출된 것과 같은 기쁨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소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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