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광영]사형수 정남규 자살을 보는 엇갈린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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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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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외투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자신이 사형을 집행한 사형수의 이름과 죄명이 적힌 쪽지였다. 고중렬 전 교도관(79)은 20년간 200여 건의 사형을 집행했다. “형이 집행되면 사형수는 잊혀지지만 집행관들에겐 악몽이 시작됩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세계 사형 반대의 날’ 기념 미사. 고 씨는 미사가 끝난 뒤 마이크를 잡았다.

“사형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사형수의 목에 밧줄 올가미를 제대로 조이지 못한 채 마루가 꺼지면서 머리가 깨진 사형수를 다시 매달기도 했죠. 목줄을 너무 길게 늘어뜨리는 바람에 사형수가 바닥에 발을 딛으려 아등바등하자 줄을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잊고 싶은 과거’를 회상하는 그의 얼굴엔 고통이 묻어났다.

그는 최근 자살한 연쇄살인범 정남규도 안타깝다고 했다. “사회에선 사형이 확정될 당시의 극악무도한 모습만 기억하지만 한 해 한 해 변해가는 사형수를 지켜보는 교도관들은 형을 집행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미사에는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사형수를 교화하는 모니카 수녀의 실제 인물 조성애 수녀도 참석했다. 조 수녀는 “정남규는 늘 고개를 숙이고 다니며 다른 수감자들과 눈이 마주치는 걸 피했다는데, 그만큼 자기 세계에 갇혀 지낸 것 같다”며 “용서를 빌 기회도 갖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게 안타깝다”고 했다.

같은 시간, 정남규의 자살에 치를 떠는 사람도 있었다.

부녀자 13명을 살해한 정남규는 2006년 3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침입해 자고 있던 세 자매에게 둔기를 휘둘렀다. 둘이 숨지고 막내는 중태에 빠졌다. 증거를 없애려 이불에 불을 놓아 아버지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세 자매의 어머니 황모 씨는 4일 통화에서 “(사형이 집행되면) 내 아이들을 죽인 사람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지 않게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한을 다스렸는데, 자살은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며 “자기 혼자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형벌에서 도망친 사람이 사형제의 희생양처럼 비치는 건 (우리에게) 또 한번의 상처”라고 기막혀했다.

자살 전 정남규는 “현재 사형을 폐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인생은 구름 같은 것”이란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황 씨는 “(자살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사죄를 했다면 이렇게 분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제하려 애쓰는 듯했지만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신광영 영상뉴스팀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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