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어떤 公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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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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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서울시교육청 교원정책과장이란 분이 신문사를 찾아왔다. 전날 본보 ‘기자의 눈’에 실린 글 때문이었다. 제목은 ‘교육 수장(首長)에 삿대질하는 서울교육청 파벌싸움’. 교원정책과장이 조직개편 방침에 반발해 교육감 대리를 맡고 있는 부교육감에게 언성을 높이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런 ‘쿠데타’ 같은 장면이 벌어진 배경엔 교육청의 뿌리 깊은 파벌싸움이 자리 잡고 있다는, 말 그대로 일선 기자의 ‘눈’이었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낸 교원정책과장은 “글에 인용된 그날 부교육감실에 간 사실이 없으며, 따로 부교육감을 만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삿대질이고, 쿠데타라니… 공직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9년 공직생활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며 분노했다. 순간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에 입술이 탔다. 비록 지금은 교육청의 행정직 간부지만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까지 지내신 교육자의 명예를 근거 없이 훼손했다면, 아니 훼손 정도가 아니라 정말 ‘짓밟는’ 결과가 됐다면? 스스로도 용납하기 힘든 상상이었다.

그러나 역시 사실이었다, 과장의 말이 아니라 우리 기자의 취재와 눈이. 그래도 혹시나 해서 부교육감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부교육감은 “교원정책과장이 조직개편에 공개적으로 반발해 사무실로 불렀다.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다만 신문엔 ‘심지어 과장이 부교육감에게 삿대질을 했다는 말까지 들렸다’고 썼지만 삿대질은 없었노라고 했다. 삿대질이 기사화된 건 유감이다. 공직사회에서 하위자가 조직의 수장에게 언성을 높이는, 그야말로 ‘말 안 되는’ 장면을 전하는 과정에서 과장이 있었던 듯하다.

그날 하루 직접 신문사 내부의 ‘옴부즈맨’이 돼 기사 검증 작업까지 마쳤지만 ‘우리 기자의 취재 내용이 정확해 다행’이라는 안도감보다는 우울한 마음이 앞섰다.

교육청 조직개편의 핵심은 교원정책과 폐지다. 명칭은 교원정책과라고 돼있지만 실은 교원인사를 쥐락펴락하는 부서다. 그런데 이 교원정책과가 유인종(전북 익산), 공정택(전북 남원) 교육감 13년 동안 교육청 내 ‘호남마피아’들의 꿀단지 노릇을 해온 터라 저항도 그만큼 강하다고 한다. 듣다 보면 군사정권 시절 경상도 군인들의 ‘하나회’가 연상될 정도다. 그래서였을까? 조직개편을 앞두고 교원정책과의 장학사 장학관 20여 명을 따로 불러 공개적인 설명회를 열어야 할 정도였다. 얼핏 보면 매우 민주적인 교육행정 같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민주공화국이 국민의 뜻을 묻는 것은 국민이 주권자, 즉 주인이기 때문이다. 교원정책과장이나 교원정책과의 장학사 장학관들은 주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주인행세를 하며 공직(公職)을 사유물(私有物)쯤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직개편을 막기 위해 그렇게 공개적으로 ‘저항운동’을 벌일 수 있겠는가. 마치 자기들 물건을 남에게 빼앗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절규하고 있다. 하긴 교육청 스스로 설명회까지 열어 ‘이해’를 구할 만큼 그들의 기득권을 인정해줬으니 착각도 무리는 아니다.

신문사를 찾아온 교원정책과장은 과장직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기도 하지만 아까운 지면(紙面)을 할애해 이런 얘기를 하는 건 과장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니라 교육청에 퍼져있는 이상한 공직 바이러스가 걱정돼서다.

김창혁 교육복지부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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