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高聲不敗 이제 끝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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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5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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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공터였던 땅에 갑자기 가건물이 들어선다. 한눈에 봐도 날림으로 지은 무허가 주택이다. 땅주인이 아닌 사람이 건물을 짓기도 한다. 아파트나 산업단지로 개발된다는 소문이 나도는 지역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개발보상금을 노린 가건물 급조는 불법이지만 한국에서는 통한다. 일단 세(勢)를 규합해 버티고, 주장하고, 규탄하면 두둑한 보상을 받아낸다는 잘못된 학습효과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어제 내놓은 보고서를 봐도 보금자리주택과 혁신도시가 들어설 지역마다 건물 신축, 토지 형질변경, 묘목 식재(植栽) 등 다양한 형태의 불법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절차적 제도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민주화 수준은 선진국 못지않다. 하지만 사적 이익을 위해 법이나 공권력을 무시하고 우습게 여기는 풍조가 남아 있는 한 가야 할 길은 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05년 ‘고성불패(高聲不敗·목소리가 크면 이긴다)’라는 잘못된 풍조가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다고 경고했다.

‘생업형 떼법’의 폐해도 크지만 사회 기본질서에 도전하는 ‘이념형 떼법’은 더 심각한 문제다. 노동계의 좌경 운동권 세력이 걸핏하면 벌여온 투쟁만능주의가 경제 및 국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된 지 오래다. 만약 삼성전자가 ‘민노총 노조’로 몸살을 앓았다면 아무리 다른 여건이 좋았어도 일본이 자랑해온 ‘세계의 소니’를 추월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진작 현대중공업 노조처럼 합리적으로 변했다면 도요타자동차와의 격차를 크게 좁혔거나 어쩌면 따라잡았을 수도 있다.

민노총 아래로 들어간 공무원노조는 새로운 차원의 위협요인으로 떠올랐다. 공무원들의 노동기본권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공무원은 노조원이기 전에 공무원으로서 먼저 지켜야 할 일이 있다. 그 핵심이 정치적 중립이다. 이를 지키지 않는 공무원까지 법률로 신분 보장을 해줄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공무원들이 특정 정치이념과 결코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민노총에 가입하는 것부터가 신분 일탈로, 신분 보장 배제 사유에 해당한다. 많은 국민은 자신이 낸 세금이 이런 노동단체를 추종하는 공무원의 월급으로 지급되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노동 분야에서 법치주의를 확립한 결정적 원동력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신념과 의지였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81년 불법파업을 벌인 공항 관제사 1만1000여 명을 파면하고 재고용을 영구 금지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1984년 탄광노조가 불법파업을 벌이자 9500여 명을 연행 또는 구속하면서 원칙을 지킨 끝에 1년 만에 항복시켰다. 당시 정치적 반대세력의 비판도 컸지만 레이건과 대처는 두 나라 역사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치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타협할 수 있는 가치에는 유연하게, 타협할 수 없는 가치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이라는 것은 우리라고 다를 리 없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서간집에서 “대패질을 하는 목수, 망치질을 하는 대장장이, 계산을 하며 머리를 굴리는 상인이야말로 진보적 인간이고 순수한 혁명가”라며 “각 개인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진정한 건설”이라고 했다. ‘떼법의 나라’에서 건전한 근로의식이나 미래를 위한 생산적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모든 분야에서 고성불패의 잘못된 신화를 깨야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는 ‘우리 시대의 목수, 대장장이, 상인’이 어깨를 펼 수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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