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는 쌀 대북지원’이 쌀값 대책일 수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9일 03시 00분


서울에서 그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한 농민들(경찰 추산 1만5000여 명)이 대북(對北) 쌀 지원을 통해 ‘쌀 대란’을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쌀 한 가마에 21만 원대를 보장하라고 주장하면서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 쌀 지원이 계속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쌀 생산량은 작년보다 7만 t 이상 늘어난 491만 t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년 연속 대풍작으로 쌀값 하락과 재고처리 부담이 더 커졌다. 하지만 쌀이 남아돈다고 해서 명분 없이 북한에 줄 수는 없다. 2년간 중단된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할지 여부는 종합적인 대북정책의 틀에서 검토돼야 한다.

북한에서 식량공급량이 최소 소요량을 밑도는 상황이 4년째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등 강경노선으로 국제사회의 원조가 크게 줄어든 결과다. 대북 쌀 지원이 재개되려면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않도록 분배의 투명성이 먼저 확보돼야 한다. 북한의 식량 취약계층은 식량배급 4순위인 일반근로자 600만 명과 배급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농민 800만 명이다.

남아도는 쌀 문제를 계속 정부 재정으로 해결할 단계는 지났다. 여건이 좋지 않은 논은 다른 작물로 바꿔 재배하는 게 옳다. 우리나라는 식량자급률이 28% 정도고 쌀을 제외하면 5%에 불과하다. 밀(자급률 0.1%) 옥수수(1%) 콩(7%) 등으로 생산전환을 하도록 정부와 유관단체가 농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직불금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 식량안보를 감안해서 일정 비율로 재배전환 농가가 나오도록 현장밀착형 시책을 추진해야 한다.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한 정책개발도 계속돼야 한다. 작황이 일정 비율 이상 좋은 해에는 초과생산량을 가공용과 사료용으로도 쓸 수 있게 하는 일본 사례도 있다.

농민대회에서 일부 야당 정치인들은 쌀 잉여생산 문제를 정부 탓으로만 돌렸다. 정치공세로는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쌀 문제를 풀려면 농민과 농민단체를 설득해 쌀 관세화(시장개방)를 앞당겨야 할 것이다. 관세화 유예를 위해 우리나라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은 올해 31만 t, 내년 33만 t이나 되고 2014년 관세화 시점까지 매년 2만 t씩 늘어난다. 적정한 수요공급이 이루어지도록 소비를 늘리고 생산을 줄이는 다양한 방안을 찾아내야만 쌀 문제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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