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국회부터 화상회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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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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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최근 5일간의 국회 대정부질문 기간에 사흘(5, 6, 9일) 국회 본회의에 출석했다. 행안부 관련 질문이 나오면 답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에게 질문을 한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세종시와 4대강 사업 등에 관한 대부분의 질문이 정운찬 국무총리에게 집중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장관은 언제 자신에게 질문이 나올지 몰라서 꼬박 자리를 지켜야 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5일), 이만의 환경부 장관과 백희영 여성부 장관, 주호영 특임장관(6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10일)도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했다가 역시 발언대 근처에도 못 가보고 하루를 공쳤다. 이들을 수행한 각 부처의 주요 간부들도 마찬가지다. 장관과 간부들이 대거 자리를 비운 해당 부처의 업무엔 차질이 빚어졌다.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시정 연설, 교섭단체 대표 연설 등이 있을 땐 거의 모든 국무위원이 국회 본회의장에 가야 한다. 국정감사는 물론 평소 상임위원회가 열릴 때도 장차관과 실·국장 등 행정부 주요 간부들은 국회에서 살다시피 한다. 이들 중 답변 기회를 얻는 이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보다는 민생을 챙기는 데도 부족한 소중한 시간을 여야의 다툼을 속절없이 지켜보는 데 허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정부질문이 있을 때 국무위원들이 국회에 출석하는 건 국회법에 따른 것이다. 국회법 제121조는 총리와 국무위원을 출석시키려면 의원 20명 이상이 발의한 출석요구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도록 하고 있다. 물론 총리와 장관은 차관 등의 대리 출석을 국회에 요청할 수 있지만 국회 존중 차원에서 가능하면 일정을 바꿔 참석한다. 국회 의사과 관계자는 “천지개벽할 일이 아니면 대리출석 요청안을 국회에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 감시하는 건 국회의 마땅한 권한이자 의무이다. 하지만 의원들이 고위 공직자들을 의정활동의 들러리 정도로 간주하며 시간을 빼앗는 건 그런 권한을 남용하는 처사다. 만일 의원들이 관청에서 불러서 갔는데 정작 공무원들이 딴청을 부려 허탕을 친다면 어떨지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볼 일이다.

최근 야당 일각에선 세종시의 행정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화상회의를 제안하고 있다. 통신 기술의 발달 덕분에 행정 부처의 분산에 따른 의사소통의 문제점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차제에 국회부터 대정부질문 등을 화상회의로 해보면 어떨까. 장관 등이 부처에서 업무를 보다 정해진 시간에 화상으로 답변할 수 있게 한다면 길거리에서, 국회에서 지금처럼 시간을 버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언론 앞에서 장관들을 호통치고, 무안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답변도 안 시킬 장관까지 국회로 불러야 할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

화상국회가 곤란하다면 최소한 행정부에 정확한 답변 시간대를 알려주고, 의사일정에 변동이 생기면 미리 통보하는 게 예의다. 행정부를 편들려는 게 아니다. 비효율적인 국회 운영은 결국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고 그 폐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국회가 화상회의를 해보면 요즘 논란이 되는 세종시의 행정 비효율이 과연 기우인지 아닌지도 체험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기흥 정치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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