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日오자와의 ‘의원 행동지침’과 한국의 금배지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2일 03시 00분


‘상임위원회 결석은 안 된다. 당내 소그룹 활동은 자제하라.’ 일본 민주당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올해 8월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초선 의원 143명을 상대로 실시하고 있는 ‘소양교육’ 내용이다. 여기에는 ‘회의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라’ ‘인사와 소개는 큰 목소리로 하라’ 같은 기초적인 행동 지침까지 들어 있다.

아무리 초선이라지만 초등학교 신입생에게나 어울릴 듯한 지침을 주며 기강을 잡는 것은 심하지 않냐는 불만이 나올 법하다. 초선 의원들이 행동거지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14선(選) 대선배의 가르침은 가볍게 여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자민당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이었던 2005년 총선 때 처음 배지를 단 83명의 ‘고이즈미 칠드런’이 이번 총선에서 대거 몰락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18대 국회에는 298명 전체 의원 가운데 135명(45.5%)의 초선 의원이 있다. 그러나 어제 마무리된 5일간의 대정부 질문만 해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의원은 10% 안팎에 불과했다. 초선 의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무총리나 장관에게 면박을 주고 비아냥거리는 질문을 쏟아내 놓고는, 정작 장관이 답변하려 하면 “됐다, 시간 없다”며 가로막는 의원들은 초선 재선이 따로 없었다. 이달 2일에는 일부 야당 의원들이 단상에 뛰어들어 이명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대독하려는 정운찬 총리의 팔을 잡거나 면전에 고함을 퍼붓고, 연설이 시작되자 한꺼번에 퇴장했다.

17대 국회 때는 탄핵바람에 대거 입성한 108명의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이 좌충우돌하며 ‘탄돌이’ ‘백팔번뇌’ 같은 말을 유행하게 만들었다. 한 재선 의원이 “초선들 군기를 잡겠다”고 하자 “군기 잡겠다는 사람의 귀를 물어뜯어버리겠다”고 말한 초선 의원도 있었다. 동아일보가 최근 각계 여론 주도층 30명에게 국회가 선진화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압도적 다수가 ‘폭력 저질 언동으로 나라 망신시키는 의원의 퇴출’을 꼽았다.

세계 언론은 ‘망치국회’ ‘폭력국회’를 대서특필했다. 그럼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구습을 따라가는 ‘국민 대표’들이 많다. 우리 정치권엔 ‘오자와 초등학교’ 같은 정치학교를 만들어 “국회의원 대접 받으려면 먼저 기본 자질부터 갖추라”고 지도해줄 선배들이 왜 없는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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