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윤종구]‘배려’부터 가르치는 日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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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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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세타가야(世田谷) 구의 한 고교 운동장에선 주말마다 초등학생 축구 경기가 열린다. 7일엔 초교 3학년 4개 팀이 오후 내내 경기를 했다. 유심히 지켜보면서 놀란 게 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운동장 한가운데에 두 줄로 서서 인사를 나눈 어린 선수들이 곧바로 상대편 감독과 부모 앞으로 달려가 “고맙습니다”라고 외치며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우리 아이도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동네 축구팀에서 몇 년 뛴 적이 있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기에 신선했다.

문득 올 8월 재미있게 봤던 일본 고시엔(甲子園) 전국고교야구대회가 떠올랐다. 본선 48경기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생중계하는 공영방송 NHK나 고시엔 대회 기간엔 고시엔 홈구장을 고교 팀에 몽땅 내주는 프로야구단의 배려도 놀라웠지만, 경기가 끝난 양 팀 선수들이 보여준 행동은 보는 이를 숙연하게 했다.

경기 종료와 동시에 양 팀 선수는 홈에 두 줄로 서서 인사를 나눈다. 대개는 이긴 팀 선수들이 더 깊이 허리를 숙여 절하고 진 팀 선수들이 고개를 들어야 비로소 허리를 세운다. 승리투수가 패전투수를 찾아가 위로하면 패전투수는 승리투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인사가 끝나면 이긴 팀은 외야를 바라보며 홈 앞에, 진 팀은 3루 쪽 더그아웃 앞에 일렬로 선다. 이긴 팀 교가가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이긴 팀 선수들은 목청이 터져라 교가를 따라 부르고, 진 팀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상대 팀 교가가 끝날 때까지 부동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선수들만큼이나 패배에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교 응원단 역시 이긴 팀 교가가 울리는 동안 조용히 서서 경청한다. 패한 선수들은 이긴 팀의 교가가 끝나면 비로소 짐을 챙기고 내년을 기약하며 고시엔 구장의 흙을 한 줌씩 주머니에 담아 운동장을 떠난다.

모든 경기에서 승패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고교생 야구경기 하나에서도 승자에 대한 존중과 패자에 대한 배려를 몸에 익히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긴 자는 승리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패한 자는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승복해야 하는지를 어릴 때부터 체득하는 모습이 야구 경기 자체보다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내가 고시엔 경기를 한 번 봤다 하면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7일 막을 내린 일본프로야구 챔피언시리즈에서 아깝게 패한 니혼햄 파이터스 감독과 선수들은 더그아웃에 나란히 선 채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높이 치켜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박수를 쳤다. 니혼햄 홈구장인 홋카이도 삿포로돔에서 마이크를 잡은 하라 다쓰노리(原辰德) 요미우리 감독의 우승 소감 첫마디는 “훌륭한 팀과 겨뤘고 그들을 응원하는 훌륭한 팬들 앞에서 우승하게 돼 더욱 기쁘다”며 상대를 우선 배려했다. 나시다 마사타카(梨田昌孝) 니혼햄 감독은 “요미우리는 우리보다 한 수 위였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열심히 뛴 우리에게도 감동적인 경기였고 바로 이것이 야구다”라며 승자를 치켜세웠다.

초등학교 동네 축구, 고등학교 전국야구대회, 프로야구 챔피언시리즈에서 공통적으로 묻어나는 것은 승자에 대한 존중과 패자에 대한 배려였다. 일본의 스포츠를 보고 있노라면 스포츠에 앞서 인간을, 기술에 앞서 예절을 먼저 배웠구나 하는 점을 느낀다. 승자 존중과 패자 배려의 문화, 승리를 겸손하게 즐기고 패배에 기꺼이 승복하는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윤종구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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