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특허에 미래전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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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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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미국시장에 100만 대 이상을 팔아 시장 점유율 3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국내 컴퓨터회사가 갑자기 무너졌다. 미국 컴퓨터회사 컴팩이 낸 특허소송에서 졌기 때문이다. 미국에 특허 하나 없던 이 회사는 제대로 대응조차 못하고 미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미국이 자국 시장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특허소송을 활용하고 있다. 1980년대에 쓰던 반덤핑제소가 2000년 이후 특허소송으로 바뀐 것이다. 작년에 미국 무역위원회(ITC)에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조사 청구 건수 10건 가운데 9건이 특허에 관한 것이다.

기업의 생존 지켜주는 필수 무기

미국의 특허소송과 제소가 급증한 데는 일명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 불리는 특허관리 전문회사가 배후에 있다. 직접 상품을 만들지 않지만 특허소송으로 돈을 번다. 2000년 1월 설립된 인텔렉추얼벤처스가 대표적이다.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수만 건의 특허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허뿐 아니라 아이디어도 사들인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수백 건의 발명 아이디어를 매입해갔다.

특허소송을 당한 기업들은 괴롭다.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을 갖고 있는 서울반도체는 2006년 세계 LED 시장의 지배자인 일본 니치아로부터 특허소송을 당했다. 주당 3만6000원이던 주가가 1년 사이에 6630원으로 떨어졌다. 3년간의 소송에 무려 5000만 달러(약 597억 원)나 들어갔다. 올해 2월 특허 분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서울반도체는 세계 LED시장의 강자로 등장했고 주가는 현재 4만 원대로 올랐다.

특허소송에 패하면 기업은 큰 타격을 받고 최악의 경우 문을 닫아야 한다. 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라 특허 분쟁도 국제화하고 있다. 기업이 스스로 생존을 지키기 위해선 특허 투자가 필수이지만 중소기업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선진 각국들은 정부 차원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강력한 특허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헌법의 기초자인 토머스 제퍼슨이 초대 특허청장을 지낼 정도로 특허를 중시해온 미국은 2008년 ‘지식재산을 위한 자원 조직의 우선화법’을 제정해 특허를 국가전략으로 내세웠다. 일본은 2002년부터 ‘지식재산 내각’을 표방하며 기업의 지식재산 경영을 지원하고, 중국은 세계 수준의 지식재산권 전문가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자국 특허 보호육성 경쟁이다.

특허전쟁의 이면에는 글로벌화 이후 달라진 제조업 경쟁력이 있다. 과거에는 제조업 경쟁력을 부품이 좌우한다고 봤다. 제품을 ‘부품들의 결합체’로 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제조업 경쟁력에 지식재산권이 추가됐다. 예컨대 휴대전화를 120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부품 결합체로 보는 동시에 7만여 건의 특허로 이루어진 특허복합체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중 1700여 건의 특허를 갖고 있는 퀄컴은 10년간 약 5조 원의 로열티를 챙겼다.

이공계 기피 막을 특허 엔지니어

종래 특허는 기업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기업을 괴롭힌다는 이미지가 컸다. 기업들이 특허에 투자해도 보상이 없다고 생각하는 데는 특허 전문가들의 책임도 크다. 우리나라의 연간 연구개발 투자액이 약 32조 원으로 세계 7위인데도 기술무역수지는 29억 달러나 적자인 것도 특허 투자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탓이다. 이제는 기술 개발을 추진하기 전에 특허 획득전략을 제대로 짜야 투자 성과가 나는 시대가 됐다.

특허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우수한 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허전쟁에서 이기려면 유능한 특허 엔지니어가 필수다. 이공계 인재들이 특허 엔지니어로서 성공하면 이공계 기피 현상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나 세계적 특허관리 회사에는 수백 명 이상의 석·박사 학위자와 특허 엔지니어가 있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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