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한나라당, 애당초 세종시에 비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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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9일 00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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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장. 한나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우리당 소속 김덕규 부의장이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안’을 직권상정했다. 안상수 의원을 비롯해 한나라당 의원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표결이 선언되자 한나라당 일부 의원은 ‘날치기 무효’를 외치며 명패를 단상에 집어던졌고, 특별법이 통과된 뒤엔 단상 앞에 모여 애국가를 부르며 반대를 표시했다.

하지만 행정중심복합도시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태도는 좌충우돌과 지리멸렬의 연속이었다. 2002년 대선 때만 해도 이회창 후보를 비롯한 한나라당 측은 노무현 후보의 수도 이전 공약을 맹렬히 비판했다. 그러나 대선에서 충청표가 노 후보에게 쏠린 것을 지켜봤던 한나라당은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2003년 12월 당론으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의원직 사퇴 카드를 앞세운 충청권 의원들의 압박을 당 지도부가 수용한 결과였다.

한나라당은 총선이 끝난 2004년 6월에는 “국가중대사를 졸속처리했다”며 국민 앞에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 정부가 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 버전만 바꿔 내놓은 ‘행정중심복합도시법안’ 처리에는 합의해줬다. 사과를 한 사람도, 후속 법안에 대한 찬성당론을 주도한 사람도 박근혜 당시 대표였다. 이재오 김문수 박계동 등 수도권 비주류 의원 38명은 반대서명을 벌이며 반발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도 반대를 명확히 했다. 그러나 17대 대선 막바지이던 2007년 11월 이명박 후보 역시 “행복도시 건설은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금 정부는 9부2처2청을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이전하는 원안(原案)을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박 전 대표는 ‘원안+알파’ 추진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가 대못질한 세종시 구상이 사실상의 수도 분할과 국가적 비효율을 낳을 것임을 뻔히 알면서 이를 그대로 집행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고, 과오를 혼자 뒤집어쓰는 일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반면 박 전 대표는 부처 이전안이 철회될 경우 2012년 대선에서 충청권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날의 우여곡절을 돌아볼 때 박 전 대표도 ‘원안 고수가 곧 일관성’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은 박 전 대표에 대해 “국가 전체를 보지 않고 눈앞의 표만을 의식하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빠져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여권 핵심부에서도 행정중심도시 대신 과학·교육 기능이 복합된 클러스터로 도시의 성격을 바꾸자는 ‘실용주의적 대안론’이 비중 있게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진정 실용적인 세종시 만들기에 국민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는 지난날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너나없이 포퓰리즘의 유혹 앞에 무릎 꿇었던 기회주의적 처신에 대한 반성과 사과부터 해야 옳다. 그런 바탕 위에서 왜 원안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지, 세종시도 살고 나라도 사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내놓고 국민과 충청도민을 설득해내야 한다. 그래야 ‘당의 존립’을 깨지 않고 박 전 대표에게도 퇴로를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이던 2005년 3월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국익을 위해 결심을 바꾸는 것은 지도자의 진정한 용기’라고 쓴 일이 있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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