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이제, 박정희(朴正熙)를 놓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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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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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를 맞아 많은 일과 말(言)이 있었다. 기자 개인적으로 눈에 띈 평가는 시인 김지하(金芝河·68)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77)의 것이었다. 김 시인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날 죽이려 했지만 두 가지 면에서 인정해. 일본 극우재벌의 돈을 안 썼고 청와대 캐비닛에 달러가 그득했지만 다 남 주고 정작 본인은 막걸리에 북어포만 먹었잖아.”

유신 시절 재야그룹의 중심인물이었던 백 소장의 말은 더 직접적이다. ‘박정희 한국의 탄생’의 저자 조우석 씨가 책에서 전하는 그의 말은 이렇다. “1972년 … 유신독재라 불렀었다. 그 시대는 세계적으로 어떤 시절이었는가? … 미국은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인종차별이 통용됐다. … 나라를 빼앗겼던 식민지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절치부심했던 박정희의 가슴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더냐? … 그는 우리 같은 사람(정치적 반대자) 3만 명을 못살게 했지만 다른 정치인들은 국민 3000만 명을 못살게 했다.”

유신을 반대하며 고초를 겪었던 민주화 거목(巨木)들의 말이라 울림이 크다. 두 사람뿐 아니다. 74년 유신체제를 견딜 수 없어 호주로 떠났던 김형아 교수(호주국립대)는 ‘유신과 중화학공업-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이란 책에서 ‘유신이라는 독재체제가 없었으면 경제 성장이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바야흐로 그(박정희)와 화해하게 된 걸까.

그가 떠난 지 한 세대가 지났다. “독재자를 용서하자”는 말도 있고 “그와 같은 구국의 영웅이 다시 나와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를 논할 때의 전제는 그와 당대 민중들이 택한 체제에 대한 성찰이 우선 필요하다. 1961년 남한의 1인당 소득은 89달러로 125개국 중 101번째였다. 당시 북한은 320달러로 세계 50위일 정도로 잘살았다. 건국 반세기 만에 중세 봉건사회에서 현대 자본주의로 압축 탈바꿈하느라 갖가지 부작용은 있었을지언정, 우리가 이룬 신화 밑바닥엔 좋은 이념과 좋은 체제, 그것을 열망했던 민중적 에너지가 있었다. 그 에너지를 모은 위대한 리더가 바로 박 전 대통령이었다.

‘우리가 잘살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잠을 줄일 때 그는 우리의 정치지도자였고 자연히 우리 마음에서 그의 모습은 우리의 성공적 노력과 연상된다. 그래서 박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 진단이다.’(복거일)

그렇다고 해서 ‘박정희 리더십’을 지금 시대에 똑같이 요구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21세기의 우리 사회는 70년대와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배고픔에서 벗어나자’ 같은 모두가 찬성하는 뚜렷한 목표를 제시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관(官) 주도의 거창한 구호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민(民)의 욕망에 기반한 삶의 디테일(detail)에 주목하는 섬세한 정치가 필요한 시대다. 김형아 교수는 ‘이제, 지지하든 반대하든 그를 놓아주자’고 했다. 금(金)에 순금이 없듯 완전한 사람이란 없는 것처럼,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가 처했던 역사적 조건과 한계 속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자는 말일 것이다. 더는 죽은 자에게 종속되지 말고 뛰어넘으라는 주문은 자나 깨나 국민과 나라생각뿐이었던 무덤 속 그가 진정 원하는 바 아니었을까.

허문명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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