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 정상회담, 成事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4일 03시 00분


남북한 당국이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비밀접촉을 했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으나 정부는 명쾌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어제 ‘남북이 조만간 고위급 접촉을 할 것’이라는 보도는 부인했지만 ‘남북 고위 관계자가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 문제를 논의했다’는 KBS 보도에 대해서는 ‘지난 얘기’라며 얼버무렸다. 정부가 강하게 부인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남북 간에 접촉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국민은 남북이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어떤 수준에서 무슨 논의를 했는지 알 권리가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成事)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이미 두 차례 정상회담을 했기 때문에 세 번째 정상회담이 열린다 해도 국민의 시선은 냉철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도 요란한 이벤트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아야 할 때가 됐다. 정상들이 어떤 형식으로 만나 무슨 내용을 협의해 실질적 성과를 거둘 것인지가 중요하다. 북이 핵을 포기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한 남북 현안 해결을 위한 획기적 계기가 되기도 어렵다.

우리는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비밀리에 추진된 회담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첫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회담 대가로 5억 달러를 북에 지불하기로 약속했고 실제로 돈을 보냈다. 국민에게 음습한 거래를 감추기 위해 비밀접촉을 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도 임기를 불과 4개월 남겨두고 비밀접촉을 통해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2000년 정상회담 때의 합의사항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지켜지지 않았다. 가장 큰 현안인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김 위원장에게 남북 정상회담은 권력을 공고히 하고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수지맞는 장사일 것이다. 지원만 받고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그만인 것처럼 돼버렸다. 올 4월과 5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위기를 고조시킨 뒤 이제 와서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 흔드는 북의 의도는 뻔하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모면하고 남으로부터 쌀과 비료 그리고 금강산관광 재개를 포함한 ‘통 큰 지원’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정부가 비밀접촉을 계속하면 북은 이명박 정부도 정상회담에 목을 매고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전임자가 했으니 나도 해보자’는 식으로 성과가 불투명한 정상회담을 답습해선 안 된다. 지금은 6자회담 개최와 국제 공조에 힘쓸 때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려면 투명하게 추진하고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북핵 논의 등 필수적인 전제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설사 북한이 비밀접촉을 제안했다 하더라도 공개협상으로 유도하는 게 옳다. 정부는 싱가포르 접촉의 전모부터 솔직하게 공개하기 바란다. 그걸 숨길 만큼 남북 정상회담이 절실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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