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왜 國格인가

  • Array
  • 입력 2009년 10월 21일 22시 40분


코멘트
수습기자시험 응시자들을 면접하면서 ‘국격(國格)을 높이려면 누가 무엇을 해야 할까’ 물었더니 누군가는 국력(國力) 특히 경제력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그러나 몇몇 산유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그것 때문에 국격을 높이 평가받고,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소련 붕괴 후의 러시아도 여전히 미국에 필적하는 핵 강국이지만 핵무기 없는 서유럽 소국들보다 국격이 높다고 할 수 없다.

경제력 군사력만으론 안 되는 것

우리 선조들의 나라 조선(朝鮮)은 경제적으로 못살고 군사적으로 침략에 시달렸다. 하지만 중국은 조선을 여타 주변국과 다르게 대우했다. 문화(文化)민족의 높은 국격에 대한 우대였을 것이다. 일찍이 2500년 전 공자(孔子)는 “그곳에 가 살고 싶다. 누추하지 않다”고 했고, 공자의 7대손 공빈(孔斌)은 ‘풍속이 순후(淳厚)해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서로 미룬다’며 동방예의군자지국(東方禮儀君子之國)이라 했다.

물론 오늘날 빈국(貧國)들이 국격 높은 나라가 되기는 어렵다. 배고픔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예절을 먼저 생각하겠는가. 더구나 주민들을 굶기고, 살아선 나올 수 없는 정치범수용소에 15만 명을 가둔 채, 3대 권력세습과 체제 유지를 위한 핵 개발에 매달리는 북한은 국격을 논할 가치조차 없다. 저들 때문에 대한민국 국격이 훼손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행히 우리는 국격을 따질 만큼 경제적 기반을 갖추었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도 선진국들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멀었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 ‘무엇이 됐으면 좋겠다’고 할 때 좋은 직업이나 부자 같은 것을 꼽는다. 일본 부모들은 보통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고 말한다. 우리도 원래는 ‘세상에 폐 끼치지 않는 것’을 중시하는 국민인데 많이 거칠어졌다. 외국 나가면 “아이 엠 소리” “스미마셍” 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잘도 하다가도 귀국 항공편에만 오르면 에티켓을 잊어버리는 국민이어서는 국격을 말하기 부끄럽다.

법질서 준수는 기본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신성하다는 의사당에서 조폭들이나 씀 직한 흉기를 휘두르며 이성(理性)의 사망을 세계에 스스로 알리는 데야 국격이 터 잡을 수가 없다. 국회의원들이 질(質) 높은 토론정치, 토론문화를 과시하며 국가사회 시스템의 합리화 고도화를 촉진할 좋은 법을 만들고 법 지키기를 솔선한다면 국격은 높아질 것이다.

국회 폭력은 뿌리 뽑을 수 있다. 그 장본인들을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자구책이다. 그렇게만 하면 우리나라 브랜드가치가 높아져 경제에 도움이 되고 결국 온 국민이 득을 본다.

지도층 엘리트의 책임 무겁다


국민 개개인도 기초적 공중질서를 지켜야 한다. 내가 안 지키면 남도 안 지키기 쉽다. 누군가가 유리창 하나를 깼는데 그것이 방치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유리창 깨는 범죄가 확산된다(사회 무질서에 관한 깨진 유리창 이론). 그래서 너나없이 공중질서를 무너뜨리면 경제도 발목 잡히고 문화도, 삶의 질도 누추한 후진국을 못 벗어난다.

지도층의 역할과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의원들이 조폭처럼 굴면서 국민더러는 ‘법 지키세요’ 해봐야 말발이 설 리 없다. 결국 온 국민이 자기 수준에 맞게 능력껏 법을 어기며 사는 저질국가가 고착된다. 국가 지도층이 이제부터라도 준법에 앞장서야 한다. 행정 입법 사법부의 요인들은 물론이고 기업계,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언론의 리더들 그리고 부자도 지도층이다.

국가나 국민이나 졸부근성을 못 버리면 천박해지고 만다. 일부 코리안은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상대국민을 무시하며 우쭐대고 쓸데없는 ‘돈질’이나 하다가 국격을 떨어뜨리고 비웃음과 적대감의 대상이 됐다. 외국인을 인종과 국적을 봐가며 우대하거나 하대(下待)하는 행태는 야비하기까지 하다.

국민 사이에 ‘배려하는 마음’이 퍼진다면 더욱 격이 높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약자에 대한 진정한 배려, 나(우리)와 다른 것에 대한 이해(理解)와 포용, 세계의 도움을 받아 지키고 발전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제적으로 공헌하려는 자세 등이 국민행동으로 살아날 때 국격은 날개를 달 것이다.

국격 업그레이드를 위한 교육, 그리고 지식인사회와 언론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할 일이다.

우리 국민은 숨 가쁘게 살아와 상당한 안정과 번영을 이루었다. 이제 먹고 사는 것, 남을 이기는 것을 뛰어넘는 가치의 격상, 가치의 이동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이 점에서도 지도층, 엘리트의 책임이 무겁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