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약업계 리베이트가 反사회적인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1일 03시 00분


이달 초 제약협회에 접수된 익명의 리베이트 제보로 의료계와 제약업계가 떨고 있다. 8개 제약회사가 11개 병원에 처방을 대가로 금품을 제공했다는 제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제약협회가 조사에 착수했다. 정부가 나서지 않고 제약협회가 제 식구를 조사하는 방식이어서 리베이트 실상이 밝혀질지 의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7년 12월과 올해 1월 17개 제약회사가 7228억 원의 리베이트를 준 것으로 추정하고 403억 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2005년 부패방지위원회는 리베이트로 인한 소비자 피해 규모가 최소 2조8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리베이트는 의약품 구입 대가로 제약회사들이 의사와 병원에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행위다. 리베이트 비용은 제약회사 부담이지만 결국은 약값에 반영돼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의사들이 리베이트에 따라 약을 처방하면 소비자들은 약효가 좋은 약을 먹을 기회가 적어진다. 제약회사들은 리베이트를 주기 위해 질 좋은 약을 개발하기보다는 복제약을 고가에 파는 전략을 택한다. 국내 복제 의약품 가격이 오리지널 대비 79%로 선진국 평균보다 18%나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제약회사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도 5.29%로 다국적 제약회사의 14%에 비해 턱없이 낮다.

과다한 리베이트는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지출 가운데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다. 지난해 약제비는 건강보험 총지출의 29.4%를 차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7.5%를 훨씬 앞지른다.

의약품 리베이트는 소비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고 건강보험 재정을 좀먹는 반(反)사회적 관행이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고 보건복지가족부는 리베이트 제공 사실이 적발될 경우 약품 가격을 20% 깎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데도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약가(藥價) 인하 조치 같은 강력한 제재의 영향으로 노골적인 리베이트 관행은 줄었으나 더 음성화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리베이트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데는 뇌물을 제공한 제약회사들만 처벌받고, 그 수위마저 낮은 데도 원인이 있다. 현재 국회에는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를 함께 처벌하는 규정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1년 넘게 계류돼 있다. 제약회사가 제멋대로 결정하는 약값 체계도 리베이트의 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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