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누가 도덕불감증 중증 환자인가

  • 입력 2009년 10월 1일 02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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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를 새로 맞은 국민의 마음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지명될 때까지는 기대를 크게 모았던 사람이 청문회에서 도덕적으로 만신창이가 됐고 인준 표결에 끝내 불참한 야당은 그를 법적으로 고발하며 ‘식물총리’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나섰으니 민활하지 못한 국정으로 고생을 더 해야 할 사람은 또 애꿎은 국민이다.

역사상 유례가 없이 혹독했던 이번 인사청문회가 증명한 사실은 무엇인가? 첫째는 공인으로 깨끗하기로 정평이 났던 총리 후보자도 상식적으로 보아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을 수 있었던 수입에까지 법적 근거를 찾아내며 깔끔하게 소득세를 자진 신고할 정도의 성인군자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최고공직자가 될 사람으로서는 실망스러운 일이고, 뼈 빠지게 일하고도 가난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작은 잘못에도 법에 시달려야 하는 힘없는 서민의 처지에서 본다면 용납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지도자 물망에 오르는 사람치고 친구가 준 용돈 몇백만 원이나 아마추어 화가인 부인이 어쩌다 그림 한 점 판 것에 대해 소득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도덕불감증에 걸렸다고 몰아붙일 정도로 결백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정운찬, 그도 성인군자는 아니다

두 번째로 드러난 사실은 대한민국에서 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산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점이다. 국방장관을 제외하고 모든 후보자가 법을 어긴 일이 있다면 이 정부만의 문제일 수가 없다. 법을 어기고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인물로 떠오를 수 있었다면 사회도 법도 잘못됐다는 증거이다. 법이 비현실적으로 엄격하여 지킬 수가 없거나 법대로만 살다 보면 손해가 너무도 크므로 법을 어기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재에 밝은 사람이 아파트 한 채를 샀다가 팔면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몇 달 사이 몇억 원을 버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이 지난 몇 년 사이, 특히 양극화 해소를 외쳤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 우리 사회가 체험한 현실이었고 공기업의 돈 잔치는 멈출 줄 모르니 작은 범법이 정말 문제가 될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드러난 점은 야당 지도부의 도덕불감증과 정계 및 지식사회 전반의 위선과 냉소주의가 극도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인사 검증은 국회의원의 의무요 권리이다. 그 철저함은 나무람이 아니라 칭찬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는 법적 심판대도 도덕적 영도자의 선출 자리도 아니다. 지명된 후보자가 국정을 운영하기에 최적임자인가를 가리는 자리일 뿐이다. 법에 앞서 양심과 상식, 그리고 국익의 극대화라는 목표가 판단의 잣대가 돼야 한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느낄 수가 없었고 후보를 도덕적으로 흠집 내겠다는 일편단심밖에 엿볼 수가 없었다. 양심과 상식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거대 비리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일이 있는 당원이 우글거리는 정당의 대표자가 합법적 병역 면제나 소득세 신고 탈루 혐의 정도를 ‘비리백화점’이라 몰아붙이고, 충청도의 표심만 생각할 뿐 국가이익 전반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 충청도 출신이면서도 충청도 민심에 당당하게 맞서는 총리 후보자를 ‘영혼 없는 앵무새’라는 막말로 몰아붙일 수 있는가.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 국회의원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큰 공통된 도덕불감증은 자신의 의무가 무엇인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맡은 일에 열중하기보다는 재테크에 더 신경을 써야 잘살고 법을 지키면 손해만 본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은 국회의원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탓이며,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현상 또한 자기 책임임을 아는 국회의원이라면 새로 취임하는 총리를 ‘식물총리’로 만들겠다는 말을 감히 어찌 할 수 있을까. 당리만 알고 국익은 모르며 총리가 제대로 일을 못할 때 피해자가 누가 될까 생각도 하지 못하는 정치적 도덕불감증은 어찌할 것인가.

‘식물총리’ 만들겠다는 野의원

이번 청문회에서 내가 느낀 우려는 우리 사회가 좋은 점도 좋은 점으로 지니지 못하고 파괴해 버리는 내성을 키우지 않느냐는 의혹이었다. 나는 우연히도 정운찬 총리를 후배 동료로서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으로 야당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줄로 믿었다. 그는 정직하고 성실한 삶의 자세와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씨로 동료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 서울대 총장에 당선됐고 소신 있게 총장직을 수행함으로써 공인으로서는 검증될 만큼 검증된 사람이었다. 야당이 그를 파괴하려 하는 대신 같이 일해 보자고 나서는 애국적 관용을 보였다면 야당의 지지도가 올라가면 올라갔지 떨어지지는 않았을 정도로 유권자가 정치적으로 성숙하다고 믿는다. 정운찬 총리는 초심을 잃지 않음으로써 훌륭한 총리로 국민의 사랑을 얻기 바란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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