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원책]인권위, 상식 속에 권위 있다

  • 입력 2009년 9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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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나라의 시샘과 부러움을 사던 자랑스러운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문제가 아니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이 퇴임 때 한 말이다. 그가 인권위원장으로 재임할 때는 이 나라에 인권이 만개하여 많은 나라의 찬사를 받았던 모양이다. 그런 찬사를 나만 몰랐던 것일까. 그 기간에 인권위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정부에 권고했다. 인권침해법이라는 이유였다. 안 전 위원장 말대로라면 시민적 정치적 권리는 이미 선진국 수준이어서 국가보안법이 오남용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주적 북한이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않는데도 인권위는 이상에 치우쳐 논란 많은 정치쟁점에 뛰어들었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구제할 목적으로 인권위는 대체복무제를 권고했다. 나라의 근간인 병역제도를 흔드는 일인데도 국방부는 도입 방침을 정했다가 정권이 바뀌자 작년 말 백지화했다. 많은 나라의 시샘을 받을 정도로 인권에 철저한 탓에 인권위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개입하고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고 미얀마의 인권을 따지면서도, 북한 주민의 인권에는 철저히 무관심했던가. 북한 주민의 인권은 안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스스로 “더는 회피해선 안 된다”고 했던 문제였다.

그런 인권위는 작년 촛불시위 때 쇠파이프와 복면으로 무장한 시위자와 이로 인해 경찰 500명이 다친 공권력의 피해는 눈감은 채 시위자의 인권만 거론했다. 인권위는 진압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있었다며 경찰청장과 현장책임자에 대한 경고와 징계를 권고했다. 인권위법에는 공권력에 의한 피해만 조사하도록 돼 있다는 이유였다. 법에 적혀 있지 않다면 공권력은 아무리 훼손해도 좋다는 말인가.

이런 권고가 나오니까 인권위 직원들의 개인 이력과 정치적 지향이 좌파에 가깝다는 비난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념적 편향이 없다고 변명한다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일과 마찬가지다. 안 전 위원장은 인권위 조직의 축소를 두고 ‘몰상식한 무시’나 ‘단세포적 정치논리’라고 하였지만 지금까지 인권위가 보여준 행태야말로 이념과 정치논리에 매여 균형감각을 잃고 상식의 궤도를 벗어났다. 그런 균형감각의 상실은 지식인의 허위의식이다. 이상론에 매달렸거나 이념에 경도된 것이 내가 인권위에 불신을 보내게 된 까닭이다. 그것뿐 아니라 논란이 분분한, 지엽적이고 사소한 사안에 권고를 남발함으로써 인권위는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켰다. 그 결과 한때 80%를 웃돌던 권고수용률이 60%대로 떨어졌다.

인권위는 인권을 상시적으로 감시하면서 우리 사회의 여러 차별행위와 권력기관의 인권침해를 막는 보루다. 사법적 구제절차가 있는데도 굳이 인권위를 두는 까닭이다. 안 전 위원장 말대로 인권위는 약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정부에 고언하는 일이 본연의 직무다. 그러나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깨서는 안 된다.

이런 염려를 안 전 위원장은 ‘국가위원회의 법적 권능에 대한 무지’로 몰아붙이면서 ‘손가락질 받는 부끄러운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결코 국가 위신을 생각해서 만든 장식적 기구가 아니다. 인권위가 본연의 임무를 넘어 이념에 끌려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독립성을 잃는 길이 되고 부끄러운 나라가 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을 꿈꾸면서 마르크스와 헤게모니 싸움을 벌였던 미하일 바쿠닌이 늘 인권타령을 했던 사실을 나는 잊지 않는다. 인권위에 대한 불신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전원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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