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정수]법인 서울대 ‘우물’ 뛰쳐나와야

  • 입력 2009년 9월 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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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이사장 겸직을 허용하는 등 총장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법인화안을 확정하고 이를 교육과학기술부가 입법예고했다. 총장은 법인화 실무를 총괄하고 초대 이사와 감사의 선임권을 갖는 설립준비위원회의 위원장도 겸하는 내용이다. 총장 선출방식도 현행 직선제에서 총장추천위가 후보를 추천하고 이사회가 선임하는 간선제로 바뀐다.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구성의 절반 이상을 외부인사로 충원한다. 법인화로 교직원 신분은 공무원에서 일반인으로 바뀌지만 신분 안정과 고용승계를 보장하고 공무원연금 역시 기존 직원에 한해 계속 적립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자율성 갖고 사회적 책임을

20여 년의 산고 끝에 드디어 국립서울대의 지배구조가 정부의 사업소 형태에서 벗어나 독립된 홀로서기의 틀이 마련된 셈이다. 국립대 법인화의 주된 목적은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국립대에 대한 정부 통제를 완화해 대학 스스로 고등교육 주체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체질을 전환하자는 취지다. 1987년 국립대 법인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후 대학 운영과 의사결정에 자율성을 부여해 대학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법인화에 사실상 첫 단추가 끼워졌다고 해석할 수 있어 크게 환영한다.

1980년대 들어 세계 주요 대학은 근대 대학제도 출범 이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부 혹은 정치권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강력한 지배구조와 관리운영체제의 재편성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세계시장의 통합과 지식정보화를 배경으로 교육연구의 경제적 가치가 극단적으로 커져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면서 학문의 수월성 보장과 대학의 국제경쟁력에 관심이 집중됐다. 여기에 더해 고등교육의 양적 팽창이 질적 변화를 초래하는 대중화시대를 맞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고등교육 예산을 납세자나 교육수혜자에게만 전가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 대학 내부의 경영체제를 정비하여 예산집행의 효율성을 기하고 제한된 자원을 전략적인 분야에 경쟁적, 차별적으로 배분하거나 부족한 재원을 사회에서 끌어와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게 됐다.

이런 사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대학 전체 차원의 조직적 대응을 가로막는 학부, 학과 교수회 중심의 자치주의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관료화된 운영방식을 재구축하는 일이 불가피하게 됐다. 지금까지 법인화 논의 과정에서 불거졌던 국가의 재정책임 방기, 교직원 신분 불안정, 교육비 부담 증가,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심지어 헌법에 규정된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론 같은 걱정은 실천적 운영규범을 정해 가는 데 조화와 타협을 통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다.

선택-집중 통해 이젠 세계로

우리는 국립대 법인화하면 으레 이사회 지배방식, 총장의 선출과 권한, 학부 교수회의 위상 같은 대학의 정치구조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법인화이고 지배구조의 전환인가 하는 점이다. 정부 이사회 교수회 사회 등 이해관계자의 역할 범위와 한계를 분명히 설정하고 참여를 보장하여 합의 형성에 노력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서울대의 세계적 경쟁력은 평가주체에 따라 대략 50∼200위로 평가된다. 이러한 순위도 최근 서울대의 경쟁 분위기가 제고되면서 많이 따라잡은 결과이다. 세계적인 교육열, 해외유학생의 비중, 우리나라 일류기업의 경쟁력을 감안하면 우리도 이제 세계 10위권 대학을 가질 때가 됐다. 서울대가 법인화를 계기로 전략적인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제고하면서 지금까지의 갈라먹기 식 대학 운영의 족쇄를 벗어나 맘껏 웅비하는 모습을 모든 국민은 기대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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