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신민영]AMF 설립 서둘지는 말자

  • 입력 2008년 11월 11일 02시 58분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는 경상수지나 외환보유액 측면에서 비교적 건전함에도 불구하고 외화 유동성 위기에 시달려 왔다. 이러한 불안정성의 뿌리에 자본자유화가 자리 잡고 있다. 자본자유화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국가 간에 자본의 한계생산성을 같게 해 자원의 효율배분을 가져온다. 그러나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극단적으로는 국가부도 사태를 초래하기도 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두 가지 접근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자체에 제동을 거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다. 경제성장 과정을 통해 금융시장 개방도를 높인 상황에서 개별 국가가 자본자유화에 제동을 걸 경우 개방의 후퇴로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금융위기와 향후의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 창출 과정에서 금융부문 자유화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다자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

좀 더 현실성 있는 대안은 지역별 공동대응체제 마련을 통해 급격한 자본이동의 충격과 부작용을 완화하는 방안이다. 현재와 같이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상황에서는 보유 외환을 많이 쌓아놓았다고 해도 외부 충격으로부터 확실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러한 차원에서 최근 정부가 노력을 기울이는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은 의미 있는 일이다. 동아시아 지역은 역내 무역의존도가 높아 AMF가 출범할 경우 파급효과가 매우 크고,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에서 달러화를 보유함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을 낮출 수도 있다.

현재 AMF 구상은 미국 및 국제통화기금(IMF)의 반대, 일본과 중국의 주도권 싸움으로 진척이 더딘 실정이다. 그렇지만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충격과 오바마 정부의 출범 등 AMF 구상 현실화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미국 주택금융 부실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금융시스템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위축이 전망되는 가운데 새로운 금융질서가 모색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여기에 미국의 신정부가 일방주의에서 다자주의 외교로 전환하면 그동안 주어진 세계 정치·경제질서에 적응해야만 했던 아시아 국가의 참여 폭이 넓어질 것이다.

기금 설립의 취지와 관련해서는 아시아 지역 자체의 이익 도모와 아울러 동아시아 외환위기 가능성을 낮춤으로써 세계 경제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의 상실감을 최소화하고 필요할 경우 미국을 포함한 시스템 구축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나라 처지에서 AMF를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이유는 충분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우리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다른 구성국이 우리나라에 일정한 대가를 요구함으로써 그러한 비용을 감수하는 일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우리 외환시장이 아직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만 심리적 불안감은 10월 하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으로 대부분 불식된 상황이다. 남아있는 불안은 외환의 수급문제에 기인한 것이어서 당장의 시장 안정 효과 또한 제한적일 것이다.

AMF에서 눈을 잠시 돌려 미국의 지분을 조정한다든지 위기에 처한 국가에 대한 지원 조건을 완화하는 등 IMF 개혁에 먼저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금융위기로 코너에 몰린 미국이 AMF 구상에 반대할 힘과 명분이 어느 때보다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AMF 설립이 워낙 복잡한 각국 간의 정치 외교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고,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가 현재와 같이 진전된 상황에서 지역적 경제 협력체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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