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이언 브레머]중국-중동 국부펀드 경계령

  • 입력 2008년 3월 18일 02시 58분


올해 1월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펀드가 210억 달러의 자금을 씨티그룹과 메릴린치에 쏟아 부어 워싱턴을 긴장시켰다. 일부 연방의원은 미국이 가진 ‘정치적으로 민감한(안보전략적 가치가 있는)’ 자산들에 외국 투자가들이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앞서 2005년에는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미국의 석유회사를 매입해 큰 논란을 불러왔다. 그 다음 해에는 두바이의 국영회사가 미국의 항구 운영권들을 사들였고, 올해는 해외 국부펀드가 미국의 금융기관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논란을 일으켰다.

국부펀드의 영향력은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커졌다. 현재 40개 국부펀드가 굴리는 돈이 3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해외투자의 12%를 차지하는 규모다. 2015년까지는 15조 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달 열린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에서는 이 문제가 거론됐다. 미국 상원의원들은 중국 같은 나라들이 국부펀드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몇몇 참석자들은 국부펀드가 미국의 정부기관에 스파이 행위를 하거나 주요 기업의 첨단기술을 빼내고, 전략적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흔들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나 다른 부국들이 국부펀드를 받아들이면서도 이 같은 문제점을 최소화하고자 한다면 해당 국가의 정부와 협력해 국부펀드들이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국이나 서남아시아가 미국과 유럽 기업에 더 많이 투자하면 할수록 그들도 국제적인 안정성을 더욱더 중시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이 금융시장의 방관자로 있는 것보다 참여자로 들어오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다.

이런 문제들과 별도로 국부펀드의 성장에는 한층 더 중요한 위험 요인이 있다. 이들에게 실제로 펀드를 제대로 운영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다. 지금 에너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국영 석유회사들을 보면 비효율적인 자금 운영이나 부실한 행정 관리로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싱가포르의 테마섹처럼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는 국부펀드도 있지만 신흥 부국에서 생겨난 펀드 중에는 그렇지 못한 것도 많다. 펀드 운영자들은 국제 정치적인 위험에 대처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중국투자공사는 미 사모펀드 운영업체 블랙펀드에 30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이 업체는 지난해 주가가 급락했다.

가장 큰 위험은 국부펀드가 무능력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을 앞세운 결과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와 원자재 시장에서 인프라 투자나 장기 개발계획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단기적인 에너지 공급 수익에 치중하는 식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도 있다.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이처럼 비효율적으로 관리할 경우 금융시장의 리스크가 커진다. 이것이야말로 선진국의 정책담당자들이 국부펀드의 위협에 주목해야 하는 진짜 이유다.

로버트 도너 미 국무부 차관보는 미국 정부가 국부펀드 투자의 틀을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면 개발도상국에서의 투자를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 간 긴밀한 공조도 필요하다.

그러나 “해외 투자자의 ‘정치적으로 민감한’ 투자활동을 막아야 한다”는 대중영합주의자나 보호론자의 주장을 귀담아들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의원들이 이런 말에 넘어간다면 이는 장래의 성장과 번영으로 통하는 문을 걸어 잠그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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