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데이비드]中경제 ‘암기형 엘리트’의 함정

  • 입력 2007년 12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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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중국에서 외동아들이나 외동딸로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부모와 네 명의 조부모가 당신을 작은 황제처럼 떠받들며 맹목적인 사랑을 쏟아 줄 것이다.

권력과 근면의 가치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관에 눈뜰 무렵 당신은 학교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경이적인 기억력이 필요한 한자를 배운다. 학교는 천천히 당신을 정부가 지향하는 인재 모델에 맞아떨어지는 인물로 다듬는다. 중국 지도층은 미국프로농구(NBA)가 선수를 사 모으듯 인재를 모집한다. 그들은 매사에 치밀하면서도 단호한 성품을 가진, 완벽한 엘리트를 원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당신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류대에 들어가려면 대입시험에서 최고의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것. 중국인들은 단 한 번에 인생의 향방이 결정되는 시험을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치러 왔다. 이 시험은 정서적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 오직 얼마나 열심히 일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이 기억할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시험을 위한 주입식 수업, 엄청난 양의 숙제를 피할 수 없다.

해마다 약 900만 명의 학생이 대입시험을 치른다. 그중 상위 1%만이 일류대에 간다. 1%에 아깝게 들지 못한 학생은 한 단계 낮은 대학에 간다. 그 차이는 결정적이다. 일류대에 가지 못한 학생에게 살길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굉장한 성공’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시험에서 성공했다고 치자. 수석으로 베이징대에 입학했다. 당신은 교수들을 신처럼 떠받들어야 한다. 좋은 학점을 얻어야 공산당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더는 정치 조직이 아니다. 이제 중국에서 ‘부(富)’ 외에 다른 정치철학은 없다.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면 다양한 기회가 기다린다. 미국계 회사에 들어갔다가 훗날 기업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아마 정부조직에 들어가 안전하게 부를 쌓으며 나라에 봉사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사실 어떤 길이든 상관없다. 기업이건 정부건 당신은 하나의 ‘기업관료제(corpocracy)’ 안에 속해 있다. 서구에서는 정부 측 엘리트와 기업 엘리트 사이에 긴장관계가 형성되지만 중국에서 그들은 공공의 부를 추구하는 하나의 조직 안에 있다.

당신은 조직의 규율을 따라야 한다. 협업은 매우 중요하다. 이념 대립은 없지만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경쟁은 치열하다. 조직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검증된 인물을 채용한다. 주 정부 소유의 철강이나 통신회사 책임자가 당신 몫이다. 당신은 빨리 승진한다.

당신은 미국인에게 중국은 이제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인재가 넘치는 정부조직이 당신의 주요 화두다. “이 정부는 현명한 아버지가 가족을 거느리듯 나라를 지배해요.” 당신은 말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시스템에 대항하는 힘은 없다. 한때 민주주의를 외치던 학생들도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경제적 자유와 기회에만 몰두한다.

기업관료제는 내부 단점을 재빨리 인정하고 보완한다. 정부가 추구한 여러 노력은 대체로 성공했다. 최근 중국은 상승 궤도에 올라 있다. 수많은 사람이 빈곤에서 탈출했다. 상하이 쇼핑몰은 미국의 어떤 도시 상점보다 화려하다. 오피스 건물이 연일 치솟고, 길은 자동차로 뒤덮였다. 당신은 이런 성취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이제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당신은 고민에 빠진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위주의 유연하고 도전정신이 넘치는 경제가 싹틀 수 있을까. 아무리 똑똑한 관료라도, 그렇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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