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시론③/이근]北의 ‘통남통미’ 전략 읽어야

  • 입력 2007년 8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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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의 사람이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우리끼리’라는 남북 관계의 시각에서 보고 있다. 한국의 대선구도와 연결한 분석, 노무현 정부의 업적 관리, 남북 관계 진전의 계기, 그리고 북한의 단기적 선물 챙기기 등 긍정적 또는 부정적 평가의 상당수가 남북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8월 말이라는 시점을 선택한 것과 그간 북한 외교의 최우선 목표를 고려할 때 정상회담 카드는 남북 관계 그 자체보다는 북-미 관계와 국제사회를 더 염두에 두고 있다. 즉, 남한을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로 가려는 ‘통남통미(通南通美)’ 전략인 것이다. 그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과 ‘2·13프로세스’의 매우 중요한 시점에서 정상회담 카드를 꺼냈다. 2·13프로세스는 북한 외교의 숙원 중 하나인 북-미 관계 정상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동시에 북한이 국제사회에 진입해 좀 더 장기적인 국가 생존을 담보할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 현재 북한은 역사상 가장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미국 정부와 가장 실질적 협상을 할 수 있음을 확인해 가고 있다. 국내외 비판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결국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문제를 해결해 내는 것을 보고 북한은 미국의 협상의지를 확인했고, 그 이후 2·13프로세스의 단계적 행동들을 교환해 나가고 있다. 대북 중유 공급 1차분이 도착하면서 북한은 신속하게 영변원자로의 가동 중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단의 방북을 수용했다.

그래서 이 시점의 정상회담에는 미국과 국제사회를 항한, 2·13프로세스에 대한 북한 최고위 지도자의 직간접적인 메시지가 담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상응하는 메시지와 행동을 확인하고 다음 단계로 진입할 것이다.

둘째, 8월 말이라는 시점은 북한이 정상회담 이후 9월에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그 이후 연쇄적으로 열릴 유엔총회의 정상회동, 그리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통령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통남통미라는 전략으로 2·13프로세스를 국가의 최고위급 레벨에서 더욱 확고히 진전시키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셋째,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언행을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에 또렷하게 전달한다. 그래서 2·13프로세스의 현 시점에서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선택한 것은 모험적 카드를 꺼낸 것이다. 만일 북한의 최정상이 전 세계 미디어 앞에서 국제사회와 미국의 신뢰를 잃게 된다면 앞으로 미국의 어느 정부도 북한을 협상 파트너로 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2차 정상회담은 북한의 처지에서 볼 때 꽃놀이패가 아니라 모험적인 승부수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제2차 정상회담은 1차적으로 북한 대 미국 및 국제사회의 게임이라는 시각에서 보는 것이 옳다. 이 시점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은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한국이 남북 관계의 시각으로만 접근해 국제사회와의 보조를 넘어선 성급한 약속을 하면 오히려 미국과 국제사회가 남북한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지 모른다. 정밀한 교환의 구도로 디자인된 2·13프로세스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급하게 가면 2·13프로세스는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 반면 2·13프로세스의 완결인 북-미 관계의 정상화는 남북 관계의 진전 역시 가속화할 것이므로 한국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2·13프로세스의 완결과 북한의 국제사회 진입 지원을 1차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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