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안남자’를 끊어버린 청와대

  • 입력 2006년 11월 6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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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문화일보의 연재소설 ‘강안남자’가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이 신문의 구독을 중단하겠다고 2일 문화일보에 통보했다고 합니다. 음란 일색인 소설 내용에 청와대 여직원들이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시비를 가리기에 앞서 해외 토픽감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소설 ‘강안남자’는 한 40대 남자의 여성편력을 그린 통속소설입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조철봉은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부동산 개발회사를 거느린 사업가로 성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여성을 유혹합니다. 작가는 그의 애정행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장면에 따라서는 포르노 소설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그동안 독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왔습니다. 일부 직장인들 사이에선 ‘인기’가 좋습니다. 그들은 “점심 먹고 사무실에 들어와 제일 먼저 읽는다”고 말 할 정도입니다. 작가도 “중년 남성의 성적 환타지를 통한 생명력의 회복”이 주제라고 밝힌 만큼 선정성에 대해 굳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이 소설을 거의 ‘쓰레기’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성계가 특히 그렇습니다. 여성을 상품화 한 3류 도색소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여성계는 특히 자녀교육에 미칠 영향을 걱정해 왔습니다. 청와대측이 밝힌 구독 중단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하지만 중립적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일에 꼭 청와대가 나서야 했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은 2002년 1월 2일 첫 회가 나 간 이래 5년 가까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소설의 음란성 시비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주무 기관인 신문윤리위원회는 그동안 공개 경고 3회, 비공개경고 21회, 주의 2회를 각각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무기관에 맡기면 될 일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시장에 맡기면 될 일입니다. 지나친 음란물은 신문의 품위를 떨어뜨릴 것이고, 결국 시장에서 퇴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신문시장에선 “강안남자 때문에 집에서는 문화일보를 구독 안 한다”는 얘기가 퍼져 있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될 일입니다. 굳이 청와대가 나서야 했다면 여성계나 문인, 학자들의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소설에 대한 판단은 궁극적으로 독자의 몫입니다. 청와대식으로 한다면 앞으로 모든 정부 부처와 기관들도 일제히 문화일보를 끊어야 겠군요. 청와대 여직원들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 재경부 여직원들도 수치심을 느꼈을 테니까요.

일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일각에선 문화일보 논조가 이 정권에 너무 비판적이어서 이런 조치가 나왔다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정치란 ‘적(敵)을 줄이고 우군(友軍)을 늘려가는 것’인데 이 정권의 청와대는 눈만 뜨면 적군(敵軍)을 만들어내면서 스스로 망가지고 있습니다. 참 딱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3분 논평이었습니다.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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