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일자리 도둑

  • 입력 2006년 10월 8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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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 가족 친지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조심해야할 말들이 많아졌다. 차기 대권주자 중에 누가 좋더라는 식의 정치적인 발언은 잘해도 본전 찾기가 어렵다. 노동조합이나 특정 이해집단에 대한 왈가왈부도 마찬가지다. 혹시 전교조나 노조에 가입한 사람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상대방에 따라서 특별히 삼가야할 말도 있다. 학생에게는 성적이나 진학, 미혼 남녀에게는 결혼, 졸업이 가까운 청년이라면 취업에 대한 얘기를 함부로 해선 곤란하다. '결혼 고시'라는 말이 나오고 경쟁률이 수백 대 1에 이를 정도로 취업난이 극심하니 자칫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15세에서 24세까지의 청년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3배인 10%선에 이를 정도로 청년 백수가 흔하다. 취업을 못한 자녀를 둔 부모들의 표정은 어둡고 힘들어 보인다. 이웃 일본에서는 대졸자 취업률이 90%를 넘고 직장을 골라서 간다는데 우리는 간혹 공무원 시험이나 입사시험에 합격한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된다.

퇴직후 일자리까지 챙기는 공기업

이달 초 서울시 공무원을 뽑는 시험에 무려 10만명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몰렸다.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 입사시험에는 예외없이 경쟁이 치열하다. 사기업 입사시험에 합격했거나 기왕에 다니던 사람들도 시험장으로 몰려든다. 재수 삼수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 열기가 짐작이 간다.

공기업의 '공(公)'만 보고도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안정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에서는 40세만 넘으면 명퇴 얘기가 나오지만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은 대개 정년까지 보장된다. 과거에는 일반기업보다 월급이 적었지만 이젠 그렇지도 않다. 학생들이 공기업의 대우가 얼마나 좋은지를 너무 잘 알기에 공기업 열기는 상상 이상이다.

최근 감사원이 밝힌 경영실태를 보면 공기업들이 분에 넘치는 대우도 모자라 퇴직후 일자리까지 챙기는 듯하다. 한국은행 산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들은 과다한 월급과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차원에서 인수한 대우증권을 팔지 않겠다고 해 퇴임 임직원의 일자리용 자회사로 두려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토지공사는 땅 장사로 폭리를 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중고생 방송교재 값을 올려 성과급으로 나눠가진 교육방송이 적발되기도 했다.

불공정한 공정위, 부도덕한 금감위

이런 공기업을 두고 '신이 내린 직장'이니 '신이 부러워하는 직장'이라고 하지만 일부 공무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일부 기관에서 현직 공무원이 법률회사(로펌)에 파견되어 기준이상의 과다한 월급이나 성과급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송 상대방이 될 수도 있는 기관에 파견되는 것조차 이상한 일인데 필요이상이 대우를 받았다는데도 공정위는 묵묵부답이다.

이런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번에는 공정거래법을 고쳐 한국공정거래진흥원이란 산하기구를 두려고 한다. 공정거래문화의 확산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퇴직 후 자리를 마련한다는 의심을 살 여지가 충분하다. 다른 정부기관에 비해 산하기구가 없는 편이지만 이미 공정경쟁연합회라는 단체가 있는 터에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매는' 꼴이 아닌가.

무엇보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등은 정부기관 중에서도 성격이 독특하다. 이들이 내린 결정은 사법부의 결정에 버금갈 정도로 기업에 영향을 준다. 미국에선 이들 기관이 대부분 정부로부터 독립해 있고, 일본의 경우는 이 기관 출신들이 퇴직후 관련 기업으로 가는 일이 거의 없다.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공정위 관리들이 퇴직후 로펌으로 직행하거나 금감위 금감원의 퇴직 임직원이 금융기관 감사로 낙하하는 일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 현상이다. 이들을 모셔가는 로펌이나 이를 방관하는 권력이나 부도덕하기는 마찬가지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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