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삶]‘남자들의 쇼핑천국’ 꿈꿔요

  • 입력 2006년 1월 3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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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사람에게 명함을 건네면 대부분 첫 반응이 “일이 재미있겠습니다”라고 한다.

힘들지 않은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남들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행운이란 생각도 든다.

대학 4학년 때 ‘머천다이저(MD·상품기획자)’ 인턴사원 지원서를 학과 사무실에서 받을 때만 해도 이 분야의 인기는 별로였다. 교수님과 친구들의 반응은 “공대를 나왔으면 제조업체로 가야지…”, “남자가 무슨 패션을…”이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10년이 지나 고급 인력들이 이 분야로 몰려들고 있다. 자신의 주관과 일에 대한 비전도 확실하다.

패션 머천다이저. 이 일로 첫발을 내디딘 회사에서 지금까지 매진해 오고 있으니 나름대로 경험이 쌓이고 자신감도 가질 법한데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유행 소재와 색상에 대해 잘 알아야 할뿐만 아니라 판매현황 자료를 분석하고 생산 부서와 품질 및 납기를 협의한 후 생산된 제품이 고객에게 잘 전달되도록 마케팅팀과 광고 및 판촉까지 논의해야 한다. 제품의 탄생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에 애정을 쏟아 붓다 보니 밤늦게까지 회의가 이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특히 고객 반응 조사를 위한 주말 매장 방문은 기본적인 업무다. 백화점 세일은 왜 꼭 나들이하기에 좋은 날씨에 하는지, 가족과 단풍 구경을 한 기억이 거의 없다.

최근 남성들도 옷 잘 입는 것이 경쟁력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각자 개성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패션산업의 부가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전에는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만들면 팔리던 시기였다. 그때는 고객의 주문을 처리하느라 매장 지원 근무를 밥 먹듯이 했다. 팔리는 제품도 비슷비슷한 스타일에다 수량도 많은, 그야말로 ‘대박’ 상품 위주였다.

지금은 패션에 대한 고객의 취향이 너무 다양해져 고객의 성향을 맞추기가 훨씬 까다로워졌다. 특히 지금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가 20대와 30대 초반을 대상으로 하는 젊은 남성복이어서 변화를 더욱 실감하고 있다.

고객을 따라잡기 위해선 남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 TV에 나오는 유명 사회자와 연예인의 옷차림을 보기 위해 TV를 시청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문자를 보낼 땐 그림말(이모티콘)을 주로 사용하고 2030세대가 관심을 보이는 재테크와 취업정보에도 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 일에 보람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문화를 창출한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남성 중심의 쇼핑문화와 그에 맞는 브랜드 만들기다. 이제 아내나 여자친구의 가이드 없이도 혼자 와서 맘껏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남성들의 쇼핑시대가 왔다. 그에 걸맞은 브랜드와 공간도 탄생해야 한다. 물론 함께 오는 여성도 심심하지 않고 함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 제공할 즐거운 공간과 만족할 만한 제품을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남성을 위한 쇼핑문화가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인식될 때면 나는 또 다른 문화 창출을 위해 힘을 쏟을 것이다.

박석용 LG패션 과장·상품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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