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인사를 겸해 이 글을 씁니다. 주간께서는 10년 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를 주장하는 사설(1995년 6월 21일자)을 직접 썼지요. 당시 한국과 일본은 단독 개최를 향해 나라의 자존심과 명운을 걸고 다툴 때였습니다. 공동개최라는 얘기 자체가 비겁하고 무모하게 여겨질 때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세계축구협회(FIFA)의 룰까지 고쳐야 하는 공동개최가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주간은 서울의 개막식에 초청되어 “태극기와 ‘히노마루’(일장기)가 나란히 들어설 때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을 느꼈다”고 회고한 적이 있지요.
감동의 물결이었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은 성사되고 두 이웃은 획기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우선 한국에서 ‘미국보다 더 좋은 일본’이라는 호감이 일고, 일본에서도 ‘용사마’ 붐에다 한류 열풍이 불었습니다. 하루 1만 명 넘게 오가는 이웃으로 발전하고, 김포∼하네다 항공노선까지 생겨나게 되었지요.
그러나 솔직히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이던 지난해 ‘우정(友情)의 해’는 서먹했습니다. 행사는 이어졌지만 우정은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그리고 독도 문제가 그렇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양국의 외교관들은 호전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한일관계에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이어 갈 차세대의 아베 신조, 아소 다로 씨 같은 우파 정치인들의 발언은 전망을 더 암울하게 할 뿐입니다.
10년 전에 한반도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도 공동개최를 적극 지지했다지요? 바로 그분의 회갑 모임이 지난 연말에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서울의 지인들이 베푼 뜻 깊은 모임이었습니다. 저도 참석해 교도통신의 히라이 히사시(平井久志) 서울특파원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때 히라이 특파원이 놀랍고도 흥미로운 얘기를 했습니다.
“부산이 2016년 이후의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유치에 나서고 있습니다. 일본의 후쿠오카도 2016년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부산과 후쿠오카는 자매도시이고 쾌속선으로 두 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입니다. 두 도시가 공동개최하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과연 두 도시는 1989년 10월에 자매도시로 맺어졌더군요. 교환 형식으로 시 직원을 파견해 근무시키고 있습니다. 후쿠오카에 있는 아사히신문 서부본사의 야마니시 기요요시(山西淸芳) 스포츠부장이 저에게 “부산의 치과에 다니는 후쿠오카 사람이 있다”고 말해 준 대로, 항공편으론 한 시간 이내의 지척입니다.
부산은 홀로 올림픽을 따내려 하기보다 후쿠오카를 업는 것이 유리하겠지요. 마찬가지로 후쿠오카도, 이미 유치 선언을 해 버린 도쿄와 단독으로 경쟁하면 아무래도 힘에 부칠 것입니다. 문득 이것이야말로 21세기형 ‘글로컬리즘’의 진수(眞髓)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국경을 넘어 글로벌(global)하게, 이웃 나라의 지방(local) 도시끼리 손잡는 것이니까요.
2016년이면 10년 후의 얘기입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2020년으로 수정해서 공동개최를 노린다 하더라도 나쁠 게 없다고 봅니다. 그 사이 한일관계는 정치 문제로 얽히고, 와카미야 주간 표현대로 ‘때때로 흐림’이 되더라도 올림픽의 붕대로 감싼 양국 관계는 ‘대체로 맑은’ 우정 어린 이웃으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나아가 월드컵 때처럼, 국경 너머의 도시와 도시끼리 올림픽을 공동개최하는 새로운 21세기의 수평 분업적 국제관계를 수범해 보이는 한일관계가 되지 않을까요. 은수(恩수)의 역사를 넘어, 가해와 피해의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화해와 호혜(互惠) 협력으로 나아가는 관계 말입니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