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세이]정윤수/8월의 아테네를 기다리며

  • 입력 2004년 1월 5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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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을 보며 가야만 하고 그렇게 갈 수 있는 지도가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헝가리의 미학자 루카치의 잠언이다. 이 잠언은 고대 그리스를 지향한다. 노예제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는 인류가 처음으로 맞이했던 ‘인간적 민주주의’의 시대였다.

그 무렵 창안된 올림픽 제전이 올해 8월 다시 아테네에서 열린다. 올여름 아테네는 밤하늘의 별을 쫓아 저마다의 지도를 들고 모여든 전 세계 젊은이들의 함성으로 뜨거워질 것이다.

벌써부터 우렁찬 고함소리가 들린다. 15년째 달리고 또 달려온 이봉주 선수를 비롯해 종합 10위를 노리는 한국 선수단은 연일 뉴스의 초점이다. 조금 ‘오버’한 듯하지만, 대한체육회 간부들이 새해 초 국립묘지를 참배했다는 소식도 이채롭다.

그런데 오늘날 올림픽이 루카치식의 경건한 제전이 될지는 의문이다. 냉전시대의 올림픽이 동서양 진영의 ‘상징 전쟁’으로 기능한 것은 옛 추억으로 돌리더라도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이후 이 제전은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상업화했다. 1996년의 애틀랜타올림픽은 상업화의 한 정점을 보여준 셈인데 관중은 파라솔 밑에서 잠깐 쉬기 위해 거대 기업에 수고비를 내야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거물들의 각종 추문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계권료의 단위를 세다 보면 다국적 기업과 미디어를 위해 선수들이 땀을 흘리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물론 현실은 엄정하다. 전 지구적 규모의 대회에 천문학적인 판돈을 댈 수 있는 자는 굴지의 대기업과 미디어그룹뿐이다. 그러므로 한 쪽 눈은 질끈 감을 것. 나머지 한 쪽 눈으로 선수들의 우아하면서도 격렬한 경연을 탐미할 것.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테네’에서 열린다? 매혹적이지 않은가. 최근 불어닥친 고대 그리스에 대한 문화적 열기까지 감안한다면 2004년의 올림픽이 최신 산업도시의 화려한 경기장이 아니라 도시 그 자체가 문화재인 아테네에서 열린다는 이유만으로 이번 올림픽은 이미 스포츠의 차원을 넘어선다.

현지의 소식은 역시 그리스답다. 파르테논신전에 모여 새해의 축포를 쏘아올린 아테네 시민들은 축제의 광장 아크로폴리스와 민주주의의 산실 프닉스 언덕을 내려와 논쟁의 마당 아고라에 모여들어 성공적인 제전을 다짐했다고 한다. 흡사 고대 신화의 한 대목처럼 들린다.

공식적으로 낮잠 시간이 존재하는 그리스, 고대 유적과 지진 때문에 지상 8층 이상의 건물을 짓지 못하는 아테네, 현대에 이르러 오랜 독재와 가난으로 시련을 겪은 이 발칸반도의 8월은 금세기 그리스인에게 가장 ‘뜨겁고 격렬한’ 정점이 될 것이다.

가장 그리스적인, 차라리 ‘희랍인’이라는 한문 투가 더 잘 어울리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의 묘비에 새겨진 다음의 문구야말로 온갖 상업주의와 권력 오남용과 경쟁제일주의로 얼룩질 올림픽의 정신을 새삼 환기시켜 준다.

“나는 아무 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 신성한 매혹과 설렘으로 8월의 올림픽을 기다린다. 다만 주의할 일 한 가지! 혹시 8월의 아테네에 간다면 지나치게 함성을 지르거나 발을 구르지 말 것. 당신의 발밑에 수천년의 유적이 숨쉬고 있으므로.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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