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이대교수 고별강의]"'극단'과 싸운게 내평생의 삶"

  • 입력 2001년 9월 7일 19시 10분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대회의실. 실내를 가득 채운 학생 교수 등 300여 청중이 고희를 앞둔 한 석학의 마지막 강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어령(李御寧·67) 교수. 국문학자보다는 전방위적 문화학자이며 평론가, 탁월한 아이디어 뱅크로 알려진 이 교수의 고별 강의 장면이다.

33세의 나이로 이 대학 국문과 교수가 된 뒤 이화여대에서만 30여년을 보낸 그의 이날 강연에는 윤후정(尹厚淨) 이화여대 재단이사장, 장상(張裳) 이화여대 총장, 소설가 최인호(崔仁浩)씨, 소설가이자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인 류철균(柳哲鈞·필명 이인화)씨, 명창 안숙선(安淑善)씨 등과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제자들이 자리를 빼곡히 메웠다.

이날 청중의 분위기는 동서고금을 꿰뚫는 해박한 지식을 가진 스승이 마지막으로 던질 화두를 기대하듯 다소 흥분이 감도는 듯했다.

장상 총장의 인사말과 제자인 김현자(金賢子)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및 류철균 교수의 감사의 말이 끝나고 ‘헴로크를 마신 뒤 우리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지식 정보 지혜’라는 주제로 그의 강연이 시작됐다.

“시의 의미를 단순화하여 사지선다형으로 풀어 가는 한국의 교육 풍토에 분노를 느끼고 그것과 싸우는 것이 대학에서 내 강의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67년 교수로 부임한 뒤 대학입시 시험감독으로 입시장에 들어갔을 때 받았던 충격으로부터 강의를 풀어나갔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주제를 묻는 문제가 사지선다형으로 출제됐던 것이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시의 의미에 대해서조차 ○냐 ×냐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염증은 그로 하여금 ‘진달래꽃’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첫 시간을 맞게 했다고 회고했다.

‘진달래꽃’을 ‘이별가’로만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 그는 ‘이별을 노래한 시도, 사랑의 만남을 찬미하는 시도 아닌…만남 속에 이별이, 이별 속에 만남이 있는’ 시로 가르쳤다고 술회했다.

고정관념을 떨치고 역설과 아이러니가 있는 ‘그레이 존(회색지대)’이 있음을 학생들이 알도록 한 것. ‘바위와 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위가 있어 서로의 관계가 있을 뿐 어떤 것도 절대적 승자는 없다’는 것을 깨우치도록 한 것이 그의 문학강의였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정보지식사회에서의 정보란 ‘고정 관념과 자신이 속한 영역의 벽을 허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헴로크’라는 단어로 이날의 화두를 던졌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마신 독약으로 우리말로는 ‘독미나리’라고 하는 ‘헴로크(hemlock)’.

그는 죽음을 뜻하는 헴로크를 마시며 제자들 앞에서 삶의 모든 지식 정보 지혜를 얘기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죽음이라는 극한을 통하여 무엇을 강조하거나 그 극한적인 부정을 통해서 오히려 긍정을 끌어내는 역설’이 바로 ‘헴로크 효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소크라테스가 신체와 영혼을 구분하며 철학자의 죽음을 찬미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마지막에 의신(醫神) 아스클레피오스에게 감사했다는 점에서 죽음의 아이러니를 강조했다.

헴로크는 죽음의 약이기도 하지만 곧 진통제이면서 사람을 살리는 의술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역설. 그는 이러한 역설이야말로 양극화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 인문학에 주는 화두라고 말했다.

“단 한사람이라도 좋으니 창조적 상상력을 지닌 인간을 길러낸 교수로 기억된다면 나는 전 생애를 두고 문화계에서 해 왔던 모든 일들의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1시간여에 걸친 강연을 끝내며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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