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종림/사이버 세상에 ‘불국토’ 열려라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8시 39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을 때, 누군가가 외쳤다. “이건 이래라 저건 저래라 잔소리만 하고 간섭만 하던 늙은이가 돌아가셨다. 이제는 우리 마음대로 살자, 이제는 자유다”라고. 장로(長老)들이 이 소리를 듣고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마하가섭을 수좌로 ‘다문제일’(多聞第一·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음) 아난이 구송(口誦)하고 대중의 동의에 따라 부처님의 말씀을 모은다. 이것이 결집(結集)의 시작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처음에는 말에서 말로 전해졌다. 다음에는 문자로 기록됐다. 활자라는 새로운 매체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필사(筆寫)로 이어졌다. 고려대장경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법보(法寶)이고 민족의 문화유산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목판이라는 독특한 기술 때문이다. 정보를 복제하는 기술로 목판이라는 기술을 사용한 나라는 우리나라 이외에 중국 일본밖에 없다. 그 전형 중의 하나가 고려대장경 경판이다. 고려대장경을 전산화하려고 했을 때 가장 끌렸던 매력 중의 하나가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바뀌는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이 말이라는 소리로 전해지다가 그 말이 문자로 기록돼 필사로 전해지고 목판에서 활자로, 다시 컴퓨터라는 기기를 통하여 전자매체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대장경 CD에 불교 변화 꿈 담아▼

매체의 변화가 주는 영향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문자의 사용이 그랬고 인쇄술의 발명이 그랬다. 문자가 소리라는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공간성을 확보했다면 전자매체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접하는 것이 가능하게 한다. 양적인 확대가 아니라 질적인 변화이고 인간의 사고나 태도의 기반이 바뀌는 것이다.

7년여 동안 5230만자의 고려대장경을 CD에 담아 전산화하면서 몇 가지 바람과 의도가 있었다. 대장경전산화작업이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한 수단이 되기를 바랐다.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불교도 변하고자 했지만 전통의 무게, 관습의 굴레,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이 갖는 한계 등이 가로막았다. 제도적인 개혁의 의지도, 이념적인 정립의 노력도, 그렇게 효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것은 벽이었다. 진짜로 넘기 힘든 벽으로 보였다. 그러나 불교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바뀐다면 변하기 싫어도 변할 수밖에 없다.

▼정보화시대 포교수단 마련▼

고려대장경은 목판본이다. 현존하는 한역(漢譯)대장경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판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700여년 동안 동북아 대승불교권에서는 기본 텍스트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중국도 우리나라도 대장경을 새롭게 활자화해 대량인쇄하는 데는 실패했다. 근대적인 인쇄문화에 적응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일본은 몇 번 목판대장경을 제조하려고 했지만 한번도 완성하지 못했으나 100년 전 ‘대정신수대장경’이라는 금속활자본 대장경의 편찬에 성공해 대량인쇄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 대장경은 세계 불교학의 기본 텍스트로 활용되고 있다.

이제 기존 인쇄매체에서 전자매체로 전환하는 때라면 우리도 한번 해볼 만하다. 지금이 한 기회인 것이다. 전자매체시대에는 고려대장경이 세계적인 불교학의 기본텍스트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전자매체시대로 진입하는 지금은 모처럼 한국 불교계가 세계 불교를 위해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작업으로 다행히 중국이나 일본보다 반발 앞서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21세기의 정보화사회 사이버공간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빠르게 진입해야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국가도 민족이라는 경계도 모호해지고 불교마저도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새로운 세계에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 해도 꿈같은 일이다. 잘하고 못하고는 그 다음의 문제다.

또 다른 꿈도 있다. 사이버 공간이라는 신대륙에서 사이버 법당도 만들 수 있고 사이버 도사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불국토(佛國土)를 건설할 수도 있다. 미래의 세계는 오는 것도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만들어 가는 세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노력하는 것만큼 불교적인 세계가 될 것이다.

종림(고려대장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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