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긴급제언]남덕우/'구조조정 특별법' 만들자

  • 입력 2000년 11월 6일 18시 53분


《“한국경제 앞엔 유가상승 금융불안 주가하락 의료대란 등 악재들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제2의 환란’은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관건은 지지부진한 기업구조조정을 진척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저성장 고물가 국제수지악화 등의 고통은 참아야 한다.” 연일 경제대책이 발표되고 기업마다 구조조정 방안을 쏟아내지만 ‘구조조정이 부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개발경제 시대에 재무부장관 부총리 총리 무역협회장 등을 두루 역임한 남덕우(南悳祐) 동아시아경제연구원 회장은 기업구조조정에 ‘원칙’과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퇴출시켜야 한다고 판단한 기업에는 금융기관이 바로 대출을 중단하고 살릴 수 있거나 살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기업에는 최대한 기업가치를 올리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

남회장은 97년 외환 위기의 가능성을 예견,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한 인물로도 정평이 나있다.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고언(苦言)을 정리한다》

―미진한 기업구조조정이 경제에 발목을 잡는다는 우려가 많은데….

“구조조정의 단계마다 ‘머뭇거린’ 게 문제다. 재무제표 등 기본 진단자료가 못 미더우니 환자가 가망이 있는지 없는지 제때에 판단을 못했다. 원칙 없이 불치환자를 연명시키는 예가 많았고 살 수 있는 기업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살리기로 판단해 놓고도 우왕좌왕하면 그동안 기업가치가 계속 떨어진다. 대우차의 예에서 보듯 제값에 팔지도,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살릴 기업’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조치는….

“부실기업을 살리는 방법은 출자전환이 유일하다. 금융기관의 대출을 출자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기존 대주주의 소유권을 박탈하는 것이므로 특혜가 아니다.”

―출자전환한 후 경영권은….

“기업갱생공사 같은 부실기업 전담기관이 필요하다. 금융기관이 기업을 직접 관리하는 것은 환자가 스스로를 치료하는 셈이다. 기업갱생공사가 기업을 인수한 후 창의적이고 유능한 경영자에게 경영을 맡겨야 한다. 일본 닛산자동차가 프랑스 르노측 경영인을 영입해 4년 만에 창립 이래 최대 흑자를 낸 것이 좋은 예가 된다.”

―기업갱생공사의 역할은 성업공사와 다른가.

“현재는 병든 기업을 격리시킬 병원이 없다. 성업공사는 죽어가는 환자의 유산을 정리하는 기관이지 환자 자체를 수용해서 치료할 만한 곳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정부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권고에 따라 부실기업을 인수해 치료하든가 제3자에게 매각하는 민간회사(Corporate Restructuring Vehicle)를 세우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워진 회사가 별로 없고 규모도 작다. 이러한 민간회사들이 제구실을 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므로 1∼2년 내에 마무리해야 할 구조조정을 여기에 기대할 수는 없다.”

―기업갱생공사는 어떻게 구성돼야 하나.

“정부 한국은행 금융단 국제금융기관이 공동 출자하는 지주회사가 바람직하다. 갱생공사가 부실기업을 시가로 사들이고 이때 생기는 매각 손실은 공적자금으로 해결한다. 갱생공사가 선임한 경영진이 회사를 어느 정도 정상화해 주가가 오르면 금융기관은 출자전환한 주식을 팔아 채권을 회수한다. 결과적으로 새 자본주와 경영인이 기업을 인수하는 셈이다. 해외에 매각하는 경우에도 일단 갱생공사가 기업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올린 후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다.”

―기업회생에 실패해 투입된 공적자금이 낭비되거나 금융기관이 부실해져 기업 대출을 줄이는 악순환이 우려되지 않나.

“기업이 돌아가고 기업가치가 올라간 뒤 매각하면 추가 부실은 생기지 않는다. 대우차를 보면 그리스 등지에서 마티즈의 인기가 대단하다. 주문이 폭주해 3개월이나 기다려야 살 수 있다. 내재적 가치가 있는 기업이라는 증거다. ‘금융기관 부실증가→신용축소→자금경색확산→부도증가→금융기관 부실증가’라는 흐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이럴 때일수록 건실(健實)에서 부실(不實)을 도려내고 구조조정과 부실을 단절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구조조정의 전반적인 문제에 신속히 대처할 체계가 필요하지 않나.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리절차를 투명하게 하고 모든 과정을 뒷받침할 특별법이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출자전환을 통한 경영권 박탈 △기업갱생공사를 통한 구조조정 △전문경영인 영입 △매각이나 회생이라는 절차를 일관되게 지원해야 한다.”

<정리〓김승진기자>sarafina@donga.com

▼남덕우씨 약력▼

△국민대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 경제학석사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경제학박사

△1954∼1969년 국민대 서강대 교수

△1969∼1974년 재무부장관

△1974∼197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1980∼1982년 국무총리

△1983∼1994 한국무역협회 회장

△현재 산학협동재단 이사장

동아시아 경제연구원(API)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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