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재단 남북포럼]신동원/상호주의 지키되 유연하게

  • 입력 2000년 5월 4일 19시 06분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북간 모든 현안이 논의될 수 있겠으나 성패를 가름하는 핵심사안은 경협 강화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북한이 정상회담에 응하는 가장 큰 이유가 남한의 경제지원이기 때문이다.

4월24일 여야 영수회담에서는 남북간 경협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지키기로 합의를 봄으로써 경협문제에 대한 기본방향이 개념적이나마 설정된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 경협문제 등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서독의 선례를 뜯어보는 것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經協 대가 반드시 챙겨야▼

서독의 화해협력 정책은 한마디로 ‘접촉과 교류를 통한 변화정책’과 ‘작은 걸음정책’이다. 동서독간에 인적 물적 교류를 쉬운 것부터 하나씩 축적해감으로써 궁극적으로 동독의 변화를 유도했던 정책이다. 동서독 교류에서 주축이 된 것은 대동독 경제지원이었는데 서독은 일관되게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했다. 독일통일 후 필자는 서독의 정부고위관리들로부터 “동독에 경제지원을 할 때마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대가를 받았다. 그것은 동독이 이득을 볼 때는 무언가 꼭 내놓아야 한다는 상호주의 원칙을 습관화시키기 위해서였다”라는 말을 들었다.

서독의 상호주의원칙 적용은 매우 유연하게 실용적 운용을 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대동독 교류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첫째는 대가는 받되 동종등가(同種等價)는 아니다. 서독의 경제지원은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동종의 경제적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동독으로서는 동종의 대가를 치를 수도 없었다. 따라서 상업적인 등가원칙은 배제됐다.

둘째, 대가는 동시지불이 바람직하나 경우에 따라 동시적으로 치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서독은 경제지원을 해주고 주로 주민들의 분단으로 인한 고통의 완화를 대가로 받았는데 이산가족의 상봉, 결합 및 교통 통신 여행규제의 완화 등은 한참 뒤에나 성사되곤 했다. 그러나 동시 발표되지는 않더라도 이런 대가는 비공개 약속으로 성립돼 있어야 하고 그 후 이행이 안되면 경제지원도 중단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대가는 외견상 흔히 동독의 자율결정으로 치르는 형식이 됨으로써 동독의 대내외 위신에 손상이 가지 않게 했다. 동독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인도적 사안을 팔아먹는다는 비난을 가급적 받지 않도록 하는 배려였다. 서독의 경제지원은 민족대화합이라는 선의의 협력사업으로 합의 발표되고 수개월 후 동독측의 인도주의에 입각한 자율적 결단 형식으로 특정 인적교류 규제 완화조치가 발표되곤 했다.

넷째, 이런 실용적 운용과 관련해 정부 여당과 야당, 또 경제계 언론계 학계 등과 공식 비공식적으로 긴밀한 사전 사후 협의를 가짐으로써 광범위한 국민적 컨센서스가 뒷받침됐다.

다섯째, 이런 상호주의적 경협집행은 우방국의 공조조치로 더 큰 성과를 확보할 수 있었다. 동서독 교역을 내독교역으로 인정해 관세 등이 면제되는 유럽공동체(EC)의 특혜부여나 EC 각국이 대동독 차관시 서독의 차관보다 유리하지 않은 조건으로 시행하는 등 서독의 경제교류 집행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리실정 맞는 방식 개발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서독은 83년 7월 동독에 10억마르크의 은행차관을 주었는데 같은 해 10월 동독은 국경지대에 있던 기관총 자동발사 장치의 철거를 발표했다. 84년 7월 9억5000만마르크의 제2차 차관을 주었을 때 동독은 한달 후 대폭적인 여행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83년 동독에서 서독으로의 이주민은 7000명이었는데 84년에는 무려 5배나 되는 3만5000명이 되었다.

독일의 경우 경제지원과 관련해 정경분리냐 상호주의냐 하는 논란은 사실상 무의미했다. 경제지원이 먼저 합의 시행되는 시점에서는 정경분리 원칙에 따르는 것으로 보이고, 얼마후 어떤 교류, 화해 조치가 있게 된 시점에서 보면 분명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 된다.

우리의 대북 경제협력 시행에서도 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계의 폭넓은 참여 속에 우리에게 맞는 실용적 상호주의 적용방식이 연구 개발돼야 할 것이다.

신동원(전 주독대사·21세기 평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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