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재단 남북포럼]백충현/'협상 원칙'지켜야

  • 입력 2000년 5월 3일 19시 36분


국제사회 최후의 냉전적 대결구도라고 알려져 있는 한반도에서 이념보다는 민족우위의 관심을 가지고 남북한의 두 정상이 회동하는 일은 분단 반세기의 청산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역사적 사건이다. 남북한의 정부당국자는 1991년 기본합의서에 통일접근의 큰 방향에 관한

기본원칙을 합의했다.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새로운 합의의 도출이 아니라 10여년 동안 진척이 없었던 실무접촉의 물꼬를 트고, 평화공존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적극적으로 합의하는 실무적 의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정상회담의 일정이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이나 실무협상에 임하면서 남북기본합의에 배치하는 문제가 제기된다면 협상은 순조롭지 못할 수도 있다. 기본합의서에서 천명한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의 근본은 상대방의 체제를 존중하고 내부 문제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주한미군의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 등 민감한 사안을 선행조건으로 암시하는 징후는 우려할 대목이다.

당장 통일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이 아니고 이제까지의 적대 및 대립관계를 평화공존과 협력의 단계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통일은 그러한 관계가 만족스럽게 정착된 기초 위에 논의할 궁극적인 목표다. 정상회담에 거는 우리의 기대도 통일에 이르는 실질적이고 단계적인 과제의 출발점을 찾는 데 있다.

▼헌법 정한 절차-내용 따라야▼

그동안 남북한 교섭의 방식은 협상유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준법절차인가에 관하여는 많은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헌법이 요구하는 절차와 내용에 충실할 때만 국민적 공감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김대중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초당적인 협의를, 법적으로는 국회의 동의를 거치는 헌법상의 국민의사 수렴절차를 밝혔다. 이제 남북협상에서 ‘협상의 목적과 절차’ 사이에는 법과 정치의 2분법이 존재할 여지는 사라졌다. 정경분리의 고충도 정경합치의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헌법 제60조는 국가안보와 상호원조, 주권을 제약하는 대외적인 합의, 그리고 국민의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과 입법사항에 대하여는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남북협상은 정치적 경제적 분야의 포괄적 교류협력이며 본질적으로 이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사안들이다.

91년 남북기본합의서 때는 국가간 조약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회동의를 피했다. 총리급이 서명한 이 합의서에 대한 언급이 이번 정상회담 합의서에서 배제된 이유는 불분명하다. 앞으로의 합의 하나 하나가 통일에 이르는 기본장전일진대 법적 당위성에 의문을 갖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모든 합의서들은 남북한에 대해 국제조약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법적으로 구속하여야 하며, 안정성을 담보하여야 한다. 남북한간의 합의내용은 단독선언, 동시선언, 공동선언보다는 협정형태로 정형화해 법적 구속력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우방과 이해 조율도 필수▼

영향력 있는 우방과의 이해조율은 우리 정부의 대북협상에서 협력 또는 제약 어느 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기본적인 문제에 관해 상당한 입장차이를 암시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테러지원국, 핵 및 미사일 위협국으로 규정하고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으로 얻은 현금이 미사일과 핵무기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북한과 일본의 수교회담에서 북한이 전승국으로서 패전국인 일본에 대한 전후배상을 주장한 접근방식도 관심의 대상이다. 김일성의 항일투쟁은 대한제국을 국제법적으로 대표하는 망명정부와의 정규전이라는 명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도적 지원에 앞장서는 유엔에서도 유엔아동기금(UNICEF)이나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식량계획(WFP) 등은 북한의 인권침해 및 수혜상황의 투명성 미흡을 이유로 회원국들에 지원 자제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근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공식화한 북한의 인권문제 거론은 미국과 서구의 우방들이 북한과의 외교관계 개선의 핵심문제로 연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7인의 탈북자에 대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이 인정한 난민자격이 묵살돼 북한으로 송환되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 함께 북한에 대한 인권문제는 침묵할 수 없는 국제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인권과 외교문제는 남북회담의 진척에 관한 우방국의 협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백충현(서울대 법대 교수·21세기 평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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