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문명권 대화, 민족내 대화

  • 입력 1998년 11월 8일 19시 43분


유엔총회가 2001년을 ‘문명권간 대화의 해’로 선포했다. 지금까지 지구촌에 만연됐던 불신 갈등, 군사적 대결을 청산하기 위해 21세기 첫해의 화두를 ‘대화’로 정하자는 뜻이다. 이란의 첫 발의와 영국 독일 덴마크 스웨덴 등 40여개국의 공동발의로 표결없이 쉽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북한이 공동발의에 나선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국제사회의 떳떳한 일에 동참하는 태도는 국가위상을 높일 수 있다.

▼문명권 개념을 정립한 헌팅턴은 세계를 8대 권역으로 나누었다. 1차대전 후 세계는 서구통치권과 신생 독립국,2차대전 후엔자유세계공산권 비동맹권이라는 3개 권역으로 구분됐다. 이런 정치적 지형(地形)의 의미가 90년대 이후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93년 뉴욕타임스가 자유세계라는 용어를 44회 등장시킨데 비해 서구라는 문명권 표현을 1백44회나 쓴 것도 그런 증거가 될 수 있다.

▼훌륭한 합의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공허하다. 유엔의 경우도 그렇다. 6·25 당시 유엔군이나 인종분규지역의 유엔평화유지군이 실천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걸프전때는 유엔군이 아닌 다국적군이 동원됐다. 최근에는 이라크가 유엔의 무기사찰을 거부하자 미국이 또 공격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유엔이 군사력보다 대화가 더 효과적임을 입증한다면 새 세기는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근호는 20세기를 히틀러와 원자탄으로 압축 표현했다. 21세기에도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 장치는 없다. 그래서 모든 갈등을 대화로 풀자는 합의는 더욱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분단체제의 대립과 문명 내부의 전쟁위험도 당사자들에겐 유엔이 우려한 문명충돌 못지않은 위기다. 한반도에서도 대화의 원칙이 금과옥조로 받들어져야 하겠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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