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세이]박순녀/「統一」원치않는 사람들

  • 입력 1997년 10월 27일 20시 13분


한때 나는 길을 가뉨立도 눈 속이 빨개지면서 콧물을 들이마시는 일이 있었다. 문득 함흥에 계실 어머니의 나이를 헤아려 보다가 서러워지기 때문이었다. 이제 구십을 넘기셨을 어머니. 요즘의 나는 서럽기보다 허무해진다. 언젠가 꼭 만나겠지 하고 거머쥐고 있던 끈이 툭 끊기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언제까지 기다려 주지 못한다. ▼ 北어머니 부르다 지쳐 어머니가 이제 없으려니 하니까 통일에 대한 열망도 시들해졌다. 이전에는 그 산천에 대해서 이야기만 해도 가슴이 아렸는데 이젠 그 통증이 없어지고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통일을 누가 해주면 고맙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별 상관이 없다. 이산가족이 통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은 이러한 나하고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십대에 집을 떠났던 우리는 이제 황혼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우리는 통일을 외치며 발버둥쳤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체념이다. 어머니는 물론 다시 보지 못하겠지만 나도 결국은 통일을 못보고 죽지, 싶은 체념. 통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던 그 가슴의 불꽃이 꺼져버렸다. 그런데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이북산천에 부모형제를 둔 우리같은 이산가족들만이 기운이 빠져버린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남한의 잘사는 사람들도 더러는 통일을 뜨악해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설마 그러랴 싶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있어서 현재 잘살고 있는데 통일이 되면 그 틀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어서 통일을 별로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누구를 탓하랴. 나의 부모형제가 그리워서 통일을 외쳤던 나 자신이나 겨우 잘 살게 된 생활의 틀이 깨질까봐 움츠러드는 사람들이나. ▼ 「나」뛰어넘어 하나 돼야 백사람이면 백사람의 이해가 다 걸려 있는 우리의 통일을 누구에게 당부하나. 백사람 모두가 나의 이해를 뛰어넘어서 서로가 뜨겁게 하나가 돼야 하는 우리의 통일을 어떻게 이룩해야 하나. 체념의 끝에서 통일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본다. 박순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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