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앞에서/이건희에세이]세기말적 변화

  • 입력 1997년 3월 31일 19시 48분


<<이건희(이건희)삼성그룹 회장이 경영 현장에서 틈틈이 써온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정상의 기업군을 이끌고 있는 최고경영자의 남다른 경륜과 세상을 읽는 눈이 글속에 담겨집니다. 그리고 내일을 향한 끊임없는 모색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금 세계는 말 그대로 세기말적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세기말에는 반드시 큰 변화가 있었다. 아마 인간은 심리적으로 10년, 1백년의 시점을 주기로 하여 뭔가 다른 위기의식을 느끼는 모양이다.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냉전구도가 와해된 이후 세계는 새로운 통합의 원리를 발견하지 못한 채 과도기를 맞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미국이 유일한 주도국으로 부상했으나 그 위력은 예전만 못하다. 때문에 세계정치 구도는 각국의 정세에 따라 그때 그때 변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이라는 기존의 삼두마차에 덧붙여 아시아 국가들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개념이 아닌 경제력을 축으로 적과 동지의 개념없이 복잡한 모습으로 얽혀 있다. ▼ 「변화 의미」깨달아야 사회적으로는 정보화의 영향으로 전세계의 문화가 동질화되고 있다. 그러나 개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가치관의 등장으로 이 변화의 방향 또한 예측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현재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한 변혁기에 살고 있다. 과거 5천년의 변화보다 지난 1백년의 변화가 더욱 무쌍했고 과거 1백년보다는 지금부터 5년, 10년 후의 변화가 더욱 심할 것이다. 반도체 혁명이 급격한 변화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수년 내에 1기가 반도체가 상용화된다. 1기가는 트랜지스터 10억개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에 드는 전력량은 10W 밖에 안된다. 그렇지만 이 용량을 진공관으로 연결해 가동하려면 2백30만㎾가 소비된다. 만약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개인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1기가 반도체가 들어간다면 원자력 발전소 2기를 들고 다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충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반도체를 설계하고 만드는 사람조차 이 엄청난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설령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변화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를 둘러싼 경영환경과 경쟁 상대자들은 이 변화를 느끼고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초음속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변화를 민감하게 피부로 느끼고 철저히 대비해 나가야 하는 시대이다. ▼ 점진적 개선은 한계 변화에 대비하고 경쟁자와 어깨를 겨루려면 우리, 특히 우리 기업들은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도약적 혁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어차피 세계 초일류 기업에 비해서는 경쟁력이 턱없이 약하다. 그런데 그들과 정면으로 경쟁해야 하는 시점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잘못하는 부분을 골라 한발한발 개선해서는 이들에 대항할 수 없다. 상식을 뛰어넘는 혁신적 노력없이는 이들과 경쟁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1990년대 들어 우리 기업들도 앞다투어 경영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상개선 차원의 점진적 경영혁신으로는 미래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우리가 경쟁해야 할 초일류 기업들은 결코 잠자는 법이 없는 토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방식을 송두리째 버리고라도 신선한 역발상(逆發想)을 통해 도약적인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이는 멋진 변화이기에 앞서 어쩌면 유일한 생존 수단일 것이다. 거북처럼 비록 빠르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현상을 개선해 나가는 것을 미덕으로 안 것이 우리이고 우리 기업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도 내일이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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