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샴페인 잔」 깨지는 소리

  • 입력 1997년 1월 6일 20시 12분


『세계경제에서 우리의 위상변화에 맞춰 기업 근로자 가계 소비자의 의식수준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또다른 경제주체인 정부, 구체적으로 공무원, 더 구체적으로는 경제운영방식만 바뀌지 않고 있다』 韓昇洙(한승수)경제부총리는 지난 3일 재정경제원 시무식에서 경제공무원들의 타성과 오만한 자세를 이처럼 강도높게 질타, 발상의 대전환을 촉구했다. ▼ 韓부총리의 질타 ▼ 연초부터 우리사회는 「너무 빨리 터뜨린 샴페인 잔」 깨지는 소리로 요란하다. 산업현장은 노동관계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파업으로 생산 수출에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 불황의 지속, 실업증대 우려, 국제수지적자 확대 걱정 등 온통 비관적 전망 일색이다. 이런 가운데 터져나온 한부총리의 「고함」은 으레 한번쯤 나오는 말로 들리기보다 적지않은 충격과 기대로 다가왔다. 경제정책팀장의 정책의지와 방향의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같은 경고에는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경제공무원들의 경제예측 능력과 위기대처 능력, 몸가짐에 관한 통렬한 자성(自省)이 깔려있다고 해석된다. 꼭 1년전인 작년초, 증시에선 반도체업종의 주가가 연일 하락했다. 미국 메릴린치사 등 세계 유수의 기관들은 향후 반도체경기 침체를 전망하고 있었다. 그때 기자는 전해(95년) 전대미문의 초호황을 누린 국내 반도체회사 대표와 만났다. 그는 『왜 승자(한국반도체회사)의 말을 안믿느냐.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반도체호황이 지속된다』고 침체전망을 일축했다. 그의 장담은 몇달후 여지없이 빗나갔다. 작년초 50달러선이던 16메가D램 가격은 연말 10달러밑으로 폭락했다. 그 결과 작년 반도체수출은 당초목표 3백7억달러의 절반을 다소 웃도는 1백78억달러에 그쳤다. 96년은 경제 각 부문의 전망이 너무 심하게 빗나가 정책운용과 기업활동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는 작년 상반기까지도 경기 연(軟)착륙을 자신했지만 나라 전체가 골깊은 불황의 늪에 빠져든 결과로 나타났다. 무역적자는 정부목표 70억달러의 3배에 육박하는 2백4억달러, 경상적자는 목표(50억∼60억달러)보다 4,5배가 많은 2백30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억지로 목표(4.5%)에 꿰맞춘 물가상승률도 가계의 실제 생활과는 거리가 먼 수치다. 경제예측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경제전망은 틀리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역설적인 말로 자위한다. 변수가 워낙 많아 정확한 예측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망이 3∼5배씩 틀리는 것을 용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 「새 잔」 준비 각고의 한 해를 ▼ 경제전망의 결정적인 착오가 가져오는 부작용은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정부건 기업이건 가계건 전망이 빗나가면 거기에 맞춰 경제활동의 기본틀을 다시 짜야하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혼란과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정책의 신뢰성에도 결정적인 타격을 줌으로써 국민적 컨센서스를 통한 활력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은 뻔한 이치다. 『다시는 작년과 같은 엉터리 전망, 형편없는 경제성적표를 국민에게 내놓지 않겠다』는 당국자의 다짐을 기대해본다. 아울러 근로자 기업 정부 모두는 허리띠 졸라매고 샴페인 잔 깨지는 소리를 주워담아 새 잔을 준비하는데 각고의 한해를 보내야 할 것 같다. 權 純 直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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