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 새지평]크리스마스에 부쳐

  • 입력 1996년 12월 24일 20시 36분


「여기 하늘이 부끄러운/사나이가 있습니다/우러러 한톨 부끄럼없이 살려다/되려 죄진 사나이가 있습니다/창 밖 눈이 소보옥히 내리는 당신의 밤에/한자루 촛불을 책상머리에 켜고/십자가의 뜻이 무엇인가를/다시금 외어봅니다」 金容浩(김용호) 시 「기원」. 오늘 아침엔 저기 저 드높은 남산 서울타워 꼭대기에 올라가 소리높여 이렇게 물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지난 밤 예수님 만난 사람 손 좀 들어보세요』 교회와 성당에서 밤새 기도와 소망의 축제가 벌어지고, 거리와 수많은 열락의 장소에서 만남과 사랑과 기쁨의 잔치가 열리고, 그리하여 새벽녘에야 잠든 사람들은 난삽한 잠자리에 코를 박은 채 이 경하해 마지않는 축일의 아침, 아직껏 잠들어 있다. ▼가난하고 겸손한 주님▼ 주님은 간밤에 어디 계셨을까. 성장제일주의의 점령군 같은 질주는 교계(敎界)라고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는 이제 놀랄 만큼 양적팽창을 거듭해온 크고 빛나는 교회와 성당들을 갖게 되었다. 기독교 이외의 타종교인까지 합치면 믿음을 가진 사람의 숫자가 오히려 우리 전체의 인구를 상회한다는 우스꽝스러운 통계수치를 본 적이 있다. 어둠이 깊어지고 났을 때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온통 붉은 십자가 물결이다. 세계 어느곳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이런 정경이야말로 복음의 말씀이 이 땅을 뒤덮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주님은 간밤에 얼마나 바빴을까. 수천 수만명이 운집한 크리스마스집회에만 잠깐씩 참석, 생일케이크를 자르기로 한다고 해도 예수님은 아마 가난하고 외로운 자에게 눈길 한번 돌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간다라는 나라가 떠오른다. 여러번의 내란과 폭압적인 독재의 악순환을 경험한 이 나라의 수도는 아직도 판잣집들로 뒤덮여 있다. 굶주린 어린이들이 떼지어 유랑하는 어느 뒷골목의 작은 판잣집 교회에 들렀을 때 보았던 예수님 목각상을 잊을 수 없다. 핍박받는 저들과 같은 얼굴색의 흑인예수님은 고통스러우면서 슬픈 표정으로 그 판잣집 교회 제단 앞에 걸려 있었다. 잠잘 곳 없는 수많은 고아들이 그 예수님 발 밑 제단에까지 빽빽히 들어차 허리를 구부리고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주님이 거기 있다고 느꼈다. 주님은 가난하고 겸손하다. 나는 우리의 교회 성당이 스스로 「나는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머물기엔 너무 풍요롭고 너무 크고 너무 웅장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독교의 유례없는 성장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포용력 나눔 관용도 성장했는가. 보라.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사야서」 52장 첫머리에 나오는 이 구절은 기독교가 우리에게 주는 큰 희망이다. 어느 외로운 개인이든, 병든자든, 아니 아직도 고통의 역사가 끝나지 않은 분단의 조국에 사는 우리민족, 또는 어느 집단이든 아무튼 우리는 주님의 「내 종」이 되고 싶다. ▼성장 제일주의 교회▼ 그러나 「교회」는 아니다. 우리의 교회는 예수님이 긴장하지 않고 내 집처럼 머물 수 있게 지금보다 더 수고하고 가난해져야 한다. 교회가 「내 종」을 자임해 「높이 들려서」있고자 한다면 크리스마스잔치가 비인간적 성장제일주의의 한 병폐 이상일 수 없을 것이다. 간밤에 은밀히 주님을 만난 분과 오늘은 함께 있고 싶다.박 범 신<작가·명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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