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AI가 인력 대체하는 시대… “무한 경제성장은 환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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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사회/다니엘 코엔 지음·박나리 옮김/232쪽·1만5000원·글항아리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건 성장시대의 경구였다. 그러나 이 책의 원제는 ‘세상은 닫혀 있고 욕망은 무한하다’(Le Monde est clos et le d´esir infini)이다.

현대인은, 특히 1960년대 이후의 한국인은 더욱, ‘경제성장’이야말로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주는 보증수표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저자에 의하면 앞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란 가능하지 않다.

가장 큰 위기는 기계와 인공지능(AI)이 인력을 대체하는 데 있다. 20세기의 경제성장은 농업 인력이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생산성을 계속 높임으로써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노동자는 이미 서비스 부문으로 옮겨와 있고, 인공지능이 그 일자리들을 가져가고 있다. 이제 일자리의 이동은 생산성 제고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20세기의 발명품들은 수많은 소비와 성장을 창출했다. 전구, 자동차, 비행기, 영화, 에어컨 등은 큰 수요를 낳았고 현대인의 삶을 변혁시켰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가 체감하는 변화란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 정도다. 매력적인 기계이지만 20세기의 변혁들만큼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로봇, 3D프린터, 무인자동차, 드론 등이 앞으로의 ‘기대주’이지만 이들도 우리 삶의 양식을 크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무한한 성장을 약속하기에 지구라는 별이 크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중국인들이 미국식으로 살면 세계 곡물 생산량의 3분의 2를 소비하게 된다. 환경적으로 가능한 성장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무한성장의 욕망을 포기하는 대신 사회 갈등의 압력이 적고 실직이 자연스러운 ‘덴마크형’ 사회로 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 비슷한 계층의 그룹끼리만 소통하는 ‘사회적 족내혼(族內婚)’을 벗어나야 하며 도시를 친환경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리적으로 꼼꼼하다고 알려진 프랑스인의 저작이지만 무한 경제성장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상황 인식과 ‘바람직하지 않다’는 윤리의식이 구분 없이 뒤섞여 아쉽다. 책 표지에 쓰인 원제의 ‘d´e sir’는 ‘d´esir’(욕망)의 오기(誤記)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출구 없는 사회#다니엘 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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