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대표팀이 보여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의 ‘기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4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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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에서 2연패를 당한 가운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첫 국제무대를 밟으며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낳았던 북한 축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데일리스타, 이스라엘 하레츠 등은 20일 북한 축구 대표팀의 뛰어난 투지와 북한팀을 열렬히 응원했던 현지 주민들, 당시 북한 선수들의 현재 상황 등을 소개했다.

북한팀의 본선 진출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영국은 적대국인 북한의 참가를 막기 위한 조치들을 내놓았다. 영국 정부는 처음에는 북한 대표팀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부당하다는 결정을 받고 비자를 발급했다. 또 영국 정부는 북한 인공기를 내걸지 않겠다고 했다가 이를 번복하기도 했다. 영국은 월드컵 토너먼트 중에 첫 경기와 마지막 경기를 빼고 북한 국가를 틀지 않겠다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탈리아를 꺾는 대활약

북한 대표팀은 출전하기 전에 김일성 주석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김일성은 이 자리에서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 축구를 통한 북한의 주체사상을 보여 달라”는 주문을 했다.

북한이 속한 조에는 구 소련, 칠레, 이탈리아가 포함됐다. 이 조의 경기는 모두 런던에서 떨어진 미들스브러에서 열렸다. 북한 대표팀은 미들스브러로 기차로 이동하는 중에 긴장을 풀기 위해 ‘천리마 군단’ 응원가를 합창하기도 했다.

미들스브러는 영국 북부의 대표적인 노동자 도시로 칙칙한 분위기였다. 미들스브러 주민들은 이 조에서 최고 약체인 ‘언더독’ 북한을 응원했다. 첫 경기 상대였던 구 소련 선수들이 건장한 체격으로 필드를 누볐지만 주민들은 평균 신장 165센티미터 밖에 안 되는 북한을 목이 터지게 응원했다. 미들스브러 주민들에게 북한은 ‘홈팀’이 됐다. 그러나 구 소련의 체력적 우세에 밀린 북한은 3 대 0으로 패했다.

북한은 다음 게임인 칠레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미들스브러 주민들은 북한 인공기까지 만들어 팔며 “코리아, 코리아”를 외쳤다. 북한 골키퍼 이찬명이 수차례 칠레의 공격을 막아냈고 주장 박승진이 페널티킥에 성공했다.

마지막 경기인 북한과 이탈리아의 경기를 보기 위해 1만8000명의 관객이 모여 들었다. 북한은 1 대 0으로 승리했다. 북한 대표팀은 미들스브러 시장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하는 등 축하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포르투갈과의 8강전은 리버풀에서 열렸다. 경기를 보기 위해 미들스브러에서 3000~5000명이 원정 응원에 나섰다. 리버풀 구디슨 스타디움에 4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관객들은 북한팀의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응원에 나섰다. 열광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북한팀은 포르투갈 에우제비오의 활약으로 5 대 3으로 패했다.

● 당시 북한 선수들 지금은 어디에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변을 낳았던 북한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김일성 주석의 명대로 북한 주체사상의 승리를 보여줬으니 큰 영광을 누렸을까.

북한 탈북자 출신인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저서 ‘수용소의 노래’(미국판 저서명: Aquarium in Pyongyang)‘에서 자신이 요덕수용소에 감금돼 있을 때 북한 축구대표팀 주장이었던 박승진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박승진이 요덕수용소의 악명 높은 독방에 수감된 것을 보았다는 것. 박승진은 독방에서 바퀴벌레 등 모든 벌레를 먹으며 생존해 별명이 ’바퀴벌레‘로 통했다고 강 대표는 전했다.

북한 대표팀은 이탈리아전 승리 후 술에 취해 현지 여성들과 몰려다닌 것이 적발돼 귀국 후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한다. 강 대표는 “내가 요덕수용소에 처음 갔을 때 박승진은 이미 그곳에 12년 동안이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북한 다큐 3부작‘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대니얼 고든은 2002년 직접 북한에 가서 촬영한 작품 ’천리마 축구단‘에서 박승진, 이찬명 등 당시 북한 대표팀 선수들이 잘 살고 있는 모습을 전했다. 선수들은 각종 메달을 목에 갈고 월드컵 당시 영국 팬들과의 교감을 감동적으로 회상하는가 하면 김일성 체제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다큐 마지막에서 귀국 후 고초를 당했다는 서구 언론의 보도를 부인하기도 했다.

북한의 잉글랜드 월드컵 참가 후 50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레츠는 전했다.

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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