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옆 사진관]눈물의 순간에도 냉정하게 셔터를…사진 기자의 평창 분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1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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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주로 밤에 열린다. 수면시간은 평균 5시간. 대입이후 처음이다. 잠이 모자란데 이상하게 낮에 잠이 안 온다. 평생 한 번 있을 취재 기회라는 긴장감. 식욕이 없고 매일 뛰다보니 다들 홀쭉해 졌다고 한다. 뱃살 3㎏ 평창에 기증한다.

그래도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있다. ‘동계 얼림픽’이라고들 한다. 요즘은 올 겨울 날씨에 비해 푹하지만 여긴 춥다. 뇌도 얼었나 보다. 장갑 같은 방한 장비를 깜빡하기 일쑤다. 기자에게 총과 같은 아이디카드도 잃어버려서 재발급 받았다. 데스크가 알면 혼난다.

현장에 서면 다시 날이 선다. 알파인스키 같은 설상 종목의 촬영 앵글은 활강 코스를 따라 더 높이 올라갈수록 좋다. 코스에 쳐진 펜스 밖으로 눈 덮인 산을 아이젠을 착용하고 쉼 없이 오른다. 아이젠 착용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한 취재 규칙이다. 더 좋은 곳에 오르려면 히말라야 빙벽을 오를 때 쓰는 호랑이 송곳니 같은 크램폰을 착용해야 한다. 크렘폰이 없는 나는 아이젠으로 오를 수 있는 곳까지 올라 셔터를 눌렀다. 파이팅이 장비를 이긴다는 신념으로.

크로스컨트리 경기 출발점에서 수㎞ 떨어진 지점. 설원에 선수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셔터를 누르자마자 망원렌즈 등 20㎏이 넘는 장비를 메고 선수들이 간 반대 방향으로 뛴다. 경기장 밖에서 또 다른 크로스컨트리가 벌어진다. 결승선에 들어올 선수를 렌즈에 담기 위해서다. 뜀박질에 지면 물(낙종)을 먹는다. 결승선의 선수들은 눈밭에 누워 가쁜 숨을 헐떡인다. 관중은 두 손으로, 사진기자들은 숨 가쁜 셔터소리로 박수친다.

“앉으세요, 설 수 없습니다.” 컬링경기장에서 사진 기자들이 서있으면 관람에 방해가 된다. 하지만 양반자세로 앉아있다가는 결정적 순간을 놓치기 십상이다. 무릎 꿇고 기다린다. 내 무릎은 40대 초반에서 60대가 됐다.

옷 색깔을 맞춰야하는 현장도 있다. 쇼트트랙 등 빙상 경기에서는 빙판 바로 앞 FOP(Field of play)구역에서는 검은 옷을, 빙판 안에서 방송카메라를 든 OBS(올림픽방송서비스) 요원들은 흰 옷을 입는다. 관람객이나 시청자의 시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조치다. 흰 옷 카메라맨은 처녀 귀신같고, 검은 옷 사진기자는 저승사자 같다.

촬영 명당 포인트는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선점해야 한다. 자리를 뜨면 그날 중요한 장면은 놓친다. 화장실을 갈 때는 옆 자리 외국 기자에게 부탁한다. 옆 기자가 화장실 갈 때도 내게 부탁한다. 자연스레 글로벌 ‘화장실 품앗이’가 생겼다.

좋은 자리를 잡아도 그곳에서 결정적 순간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20일 여자 쇼트트랙 3000m계주에서 중요 지점은 결승선이 아니라 반칙이 벌어진 곳이었다. 결승선 붙박이 기자들은 물을 먹었다. 시속 100㎞가 넘는 썰매 종목, 스키점프 등은 눈 깜짝할 때 선수가 앵글 밖으로 사라진다. 경기가 1000분의 1초 승부이듯 사진 기자도 초 집중 상태다. 하지만 오늘 성과가 좋든 나쁘던 사진을 송고해야한다. 그날 실수에 대한 감정은 그날 마감해야 한다.

윤성빈 선수가 스켈레톤 4차 주행을 끝낸 순간의 표효, 이상화 선수 눈물의 순간에도 난 냉정하게 차가운 셔터를 눌렀다. 마감을 마치고 찍은 사진을 모니터로 보는 순간 비로소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왔다. 나도 내게 금메달을 줬다.

평창·강릉=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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