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다시 아날로그를 꺼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아날로그의 반격/데이비드 색스 지음·박상현 이승연 옮김/448쪽·1만6800원·어크로스

매순간 난사하는 스마트폰 사진은 가족 앨범 속 인화된 사진을 사라지게 했다. 손 떨림이 그대로 드러난 ‘실물의 사진’ 경험을 찾는 이들이 로모그래피의 주요 구매자다. 사진 출처 lomography.com
매순간 난사하는 스마트폰 사진은 가족 앨범 속 인화된 사진을 사라지게 했다. 손 떨림이 그대로 드러난 ‘실물의 사진’ 경험을 찾는 이들이 로모그래피의 주요 구매자다. 사진 출처 lomography.com
제목이 좀 과하다. 영어 원서 제목은 심지어 ‘revenge(복수)’다. 아날로그라는 단어에 굳이 인격을 부여한다면 디지털에 공격당해 패퇴했다는 자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제목보다는 마셜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1964년)에서 발췌해 속표지에 인용한 문장이 책 내용을 적절히 함축한다.

“새로운 미디어는 기존 미디어에 추가되지도, 기존 미디어를 그냥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기존 미디어에 끊임없이 개입해 새로운 모습과 위치를 찾게 한다.”

눈여겨볼 단어는 ‘새로움’이다. 현 시점에서 디지털 미디어는 새로움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존 미디어’가 된 디지털에 개입해 변화를 더할 지금의 새로운 미디어는 뭘까. 세계 각국에 40여 개 매장을 운영하며 2000만 유로(약 260억 원)가 넘는 연 매출을 내고 있는 필름카메라 업체 로모그래피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로모그래피의 고객은 과거에 대한 향수나 고집 때문에 필름카메라를 고수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카메라의 기술적 성능에 지나치게 신경 쓰기를 꺼리며 디지털 표준과 다른 새로운 경험을 찾으려 하는 사진작가들이다. 대다수는 아날로그 카메라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는 20대다. 난생 처음 기계 셔터 소리를 들어보고 카메라를 구입하는 거다.”

이 이야기는 디지털 카메라와 아날로그 필름카메라 중 어느 것이 더 유용한가, 또는 이미지 해상도가 더 좋은가의 문제와 무관하다. 이탈리아 북서부 페라니아 마을에서 스틸 사진과 영화용 컬러 필름의 재생산을 도모하고 있는 사진작가 니콜라 발디니도 “매일 사진 찍는 데는 스마트폰이 최고”라고 말한다. 그는 ‘모두를 만족시킬 최적의 카메라’를 만들려 하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옛 창작도구의 가치를 판단해 선택할 권리를 부활시키려 한다.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레코드판, 종이, 보드게임 등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이 시장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현상을 돌아본 뒤 인쇄업, 오프라인 유통업, 수공제조업 등 사회 전반에서 아날로그적 요소가 복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변화의 밑바탕에는 취향의 흐름만 있는 게 아니다. 저자는 아날로그가 가진 ‘비효율성의 가치’에 주목한다.

“LP 레코드 제작 공정은 표준화가 불가능하다. 하나를 찍어내는 30초 동안 습기, 플라스틱 용해물 상태 등을 살피는 데 계속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다. 미국 최대의 레코드 공장 URP에서는 약 20%의 생산품이 맨눈 검사로 불합격 판정을 받아 폐기된다. 이 회사는 최근 규모를 2배로 확장했다. 비슷한 시기 유명 음원 스트리밍 업체 알디오는 파산을 선언했다.”

수집했던 모든 음반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클라우드에 넣어놓고 ‘세상의 모든 음악을 무한히 들려준다’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무감하게 사용하던 저자는 어느 날 우연히 동네에 새로 연 음반가게에서 LP 한 장을 구매한 뒤 ‘음악을 열심히 듣는 경험’을 오랜만에 돌이킨다. 지금 듣는 곡에 집중하지 못한 채 ‘더 나은 선택이 있지 않을까’ 계속 리스트를 넘겨보는 행위를 멈추게 된 것. 그는 “디지털 음악의 편리함이 음악을 듣는 행위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빼내버린 걸 그때 깨달았다”고 썼다.

“혁신은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혁신의 과정은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우리의 삶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들이다. 이 책은 디지털 기술에 반대하려 쓴 것이 아니다. 디지털 세상에 아날로그를 가까이 끌어들여 장점을 활용하기 위함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아날로그#아날로그의 반격#데이비드 색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