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전성철]청와대 수사지휘는 사건 거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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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사회부 차장
전성철 사회부 차장
“민정수석은 수사지휘 안 합니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임명 직후, 언론과 첫 만남에서 한 발언이다. 조 수석은 검찰이 왜 ‘문제아’가 됐는지 정확히 짚었다.

헌법은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강제 수사는 검사가 직접 하거나 검사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다. 특별검사팀이 꾸려질 때, 현직 검사 파견을 받는 것도 이 조항 때문이다. 각종 영장 청구서에 서명을 해줄 검사 없이는 어떤 수사도 불가능하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이처럼 막강한 검사를 지휘, 감독할 수 있는 사람은 검찰총장을 포함한 수사 검사의 상급자들뿐이다. 검찰에 수사지휘를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외부자는 법무부 장관이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도 개별 사건 수사지휘를 할 때는 검찰총장을 통해야 한다. 수사지휘는 예외적 상황에서, 투명한 절차를 밟아서 해야 한다는 취지다. 검사를 정치적 외압에서 보호하기 위해 헌법과 법률은 이렇게 높은 벽을 쌓아 뒀다.

하지만 검찰은 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포기하고 자신의 권한을 청와대와 은밀하게 공유했다. 청와대가 관심 갖는 사건 대부분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장은 매주 검찰총장과의 단독 면담에서 중요 사건 처리 결과 및 진행 상황을 보고한다. 서울중앙지검장은 이 자리에 향후 수사 계획 등 수사 비밀이 담긴 보고서를 들고 간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이 민감한 보고서는 약간의 수정과 가감을 거쳐 법무부와 청와대에 전달된다. 박근혜,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이전 정권에서도 이런 양상은 거의 비슷했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보고를 받은 청와대는 법무부에 향후 수사 방향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냈다. 이 의견은 법무부 실무자들을 거쳐 수시로 검찰에 전달됐다. 개별 사건 수사지휘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하도록 한 법은 무시됐다.

청와대는 오랜 기간 이런 방식으로 검찰을 사실상 지휘했다. 검찰 출신 민정수석과 형식적으로 사표를 내고 청와대에 편법 파견된 검사들, 그리고 법무부와 대검은 이 과정의 조력자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검 내부 회의에서 ‘잘나간다’는 검사장이 “‘강북(청와대)’의 뜻은 이렇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할 정도가 됐다.

법적 근거 없이 하는 청와대 수사지휘의 실체는 사건 거래다. 장막 뒤에서 청와대는 검찰에 은밀한 지시를 내리고, 이를 잘 따르는 검사는 승진과 좋은 보직으로 보상했다. 사건 거래는 검찰에 대한 신뢰를 망쳤다.

조 수석이 수사지휘를 안 한다고 선언한 것은 청와대가 검찰과 사건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또 검찰과 거래해야 할, 법적 문제가 될 사건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검찰을 조종하고픈 욕망을 누르는 일은 금단 증상이 크겠지만, 국정 농단 사건에서 상처받은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바다.

이 일이 성공하려면 조 수석은 말부터 신중해져야 한다. 11일 ‘정윤회 문건’ 사건 재조사 방침을 밝히면서 “(문건 사건을 조사한) 당시 민정수석실과 검찰 책임자들이 벌을 받지 않은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언급한 것은 너무 가벼웠다. 정윤회 문건 사건 재조사는 청와대가 정무적으로 결정할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수사기록도 안 열어보고 잘잘못을 어떻게 아느냐. 이게 수사지휘가 아니면 뭐가 수사지휘냐”는 검찰의 항의는 타당하다.

조 수석은 더 이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상의 스타 ‘조국 교수’가 아니다. 민정(民情)을 살펴 대통령에게 전해야 할 참모가 본인의 말 때문에 구설에 올라서는 곤란하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
#청와대 수사지휘#조국 대통령민정수석#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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