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의 지혜]유상증자 자금, 평균 0.7%만 설비투자로 이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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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경제 교과서나 신문 기사를 통해 기업의 투자자금 조달 통로로 주식시장의 역할이 강조되곤 한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은 기업이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 이는 설비투자로 이어져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에선 실제 유상증자가 얼마나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그렇게 조달된 자금은 기업 설비투자를 위해 어느 정도나 흘러들어 가고 있을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의 2016년 회사채 발행은 281건(24조4000억 원)이었지만 유상증자(신규 상장 제외)는 90건(6조3000억 원)에 불과했다. 이는 경영자들이 대체로 부채 조달에 비해 유상증자를 기피한다는 자금조달순위이론(pecking order theory)의 예측과 일치한다.

유상증자로 조달된 자금이 어떤 용도로 배분되는가에 대해 분석하면 매우 놀라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경우 유상증자 조달자금이 설비투자로 이어지는 비중은 극히 적었다. 계량경제기법을 사용해 추정한 결과 평균적인 한국 상장기업이 유상증자로 100억 원을 조달할 경우 평균 약 0.7%에 불과한 7000만 원 정도만이 설비투자 용도로 사용됐다. 반면 현금을 쌓거나 단기 부채를 상환할 목적으로 배분되는 자금 규모는 평균적으로 각각 31억 원, 11억 원에 달했다.

특히 자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그룹 모회사의 경우 유상증자 조달자금의 주요 사용처는 자회사 지분 투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인 모회사가 유상증자로 100억 원을 조달할 때 이 중 46억 원 정도가 자회사 지분 투자로 흘러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자회사로 흘러간 자금조차 자회사 내 설비투자보다는 부채 해소, 보유 현금 증가 등 재무구조 개선 목적으로 주로 사용됐다.

미국 기업은 어떨까. 미국 센트럴 플로리다대 교수 등으로 이뤄진 연구진이 2009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유상증자 자금 중 평균 38% 정도는 설비투자로 흘러갔다. 한국 실정과 매우 다른 결과다.

유상증자가 활발한 설비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매우 우울한 일이다. 제도적 개선을 통해 이 현상을 해소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 한국의 독특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서정원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EMBA 학과장 jungwonsuh@skku.edu
#유상증자#설비투자#자금#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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