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 경희대 석좌교수 “책임총리-거국내각, 現헌법으로 얼마든지 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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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정국, 원로에게 길을 묻다/靑-與-野 향한 쓴소리]허영 경희대 석좌교수
지금은 헌법장애 상태… 총리에 내치 전권을 대통령-與野 모여 총리 권한 세밀히 정해야… 하야 주장 무책임… 野 정치공세만 하면 안돼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총리를 추천해 달라고 국회에 말했으면 (그렇게 임명된) 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총리를 추천해 달라고 국회에 말했으면 (그렇게 임명된) 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원로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80)는 8일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로 직무 수행을 못 하는 ‘헌법 장애’ 상태로 볼 수 있다”며 “현행 헌법에서 국무총리에게 직무를 위임할 수 있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헌법 71조(대통령 궐위·闕位나 사고로 직무수행 할 수 없을 때는 총리 등이 권한을 대행한다)를 적용해 ‘내각 통할(統轄) 총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대통령 대신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심의뿐만 아니라 의결까지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하야 주장은 무책임하다”며 “(시민과 여야 모두) 헌법 테두리 내에서 해결하겠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로 자신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70분간의 인터뷰에서 허 교수는 조언과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오늘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해 주시면 그분을 총리로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하는 권한을 드리겠다”고 했다. 현행 헌법에서 가능한가.

 “현행 헌법은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있어 책임총리제와 거국중립내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무위원 제청권은 총리에게 있지만 현재까지는 제대로 행사된 적이 없다. 이것 자체가 헌법 정신에 맞지 않다. 제청권을 충분히 활용하게 된 총리는 실질적인 국무위원 인사권을 갖게 되고 그렇게 되면 총리의 국정 통할권이 살아난다. 사실상 총리에 의해 발탁된 장관들이 총리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질적인 내각 통할’의 의미는….

 “(박 대통령이) 모든 걸 총리에게 맡기겠다고 하면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국정을 논의하면 된다. 총리가 지시도 하고 보고도 받고 통할하는 것이다. 모든 권한이 사실상 총리에게로 넘어가는 것이다. 대통령이 지금처럼 사실상 대통령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국정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대통령이 수석비서관을 모아 회의를 하고, 수석비서관들이 메모했다가 장관들한테 대통령 말씀이라며 지시하는 방향으로 해 왔기 때문이다. 헌법에는 수석비서관 이런 단어는 들어가 있지도 않다.”

 ―헌법 86조 2항에는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책임총리가 가능한가.

 “현행 헌법에서 국무회의는 국가 정책을 심의해서 대통령에게 건의하면 대통령이 결정하게 돼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궐위는 아니지만 사고로 인해 정상적인 직무 수행을 못 하는 것에 해당되니 직무를 위임할 수 있다.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게 아니다.”

 ―내치와 외치를 구분하기도, 또 대통령 권한을 어디까지 총리에게 위임할지도 명확하지가 않은데….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이나 외교 등에서 상징적 존재로 남고 실질적 권한은 총리에게 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의원내각제 개헌을 도입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좋은 모멘텀(계기)이 될 수 있다. 다만 권한을 어떻게 위임할지 정리하기 위해 하루빨리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영수회담을 해서 디테일하게 논의해야 한다. 야당도 ‘대통령의 발언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식의 정치 공세를 하지 말고 이제는 만나야 된다. 야당도 헌법 테두리 내에서 해결하겠다는 모습을 보이는 게 수권 정당으로서의 자세다.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 등 선결 조건을 요구하며 회담을 반대하면 안 된다. 국민은 지쳐 있다.”

 ―하야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무책임한 주장이다. 대통령이 그 말에 따라 하야한다면 대통령도 대단히 무책임한 것이다. 대통령은 사태를 수습해서 혼란을 정리하고 총리 중심으로 국정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당장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변화가 생길 수 있는 한미 동맹 관계도 조율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검찰 수사 결과 헌법과 법률을 어긴 게 명백히 드러나면 그때 대통령이 결단해야 된다. 지금 드러난 혐의만 봐도 대통령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퇴임 후 형사 처벌 받는 건 불가피하다고 본다.”

 ―정치권에선 탄핵 주장도 나온다.

 “야당이 정말로 헌법질서를 무시하고 위법을 했다고 판단한다면 지금처럼 ‘물러나라’고만 얘기할 게 아니라 정식으로 탄핵심판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금 같은 정치 상황에서 20만∼30만 명이 모여서 시위하고 물러나라고 해서 대통령이 물러나면 앞으로 누가 하더라도 견디지 못한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물러나라고 해서 물러나는 자리가 아니다.”

 ―4·19혁명, 6월 항쟁과 현 상황을 비교하기도 한다.

 “대통령 하야는 민주시민이면 함부로 주장해선 안 된다. 의사표시는 할 수 있지만 시위를 파괴적인 방향으로 몰고 가거나 청와대를 점령하자고 하는 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국민은 주권자로서 마지막에 일어나야 한다. 저항권이라는 건 다른 모든 헌법적 수단을 썼는데도 수습이 안 될 때 최후로 나서는 것이다. 그게 4·19혁명이고 6월 항쟁이었다. 지금 사태와 비교하면 안 된다.”
 

::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80) ::

△1936년 충남 부여 출생 △경희대 법학과 졸업 △독일 뮌헨대 법학박사 △독일 자르브뤼켄대 조교수 △연세대 법학과 교수 △2001년 뮌헨대 초빙교수 △명지대 법학과 초빙교수 △헌법재판연구원 초대 원장 △저서 ‘헌법이론과 헌법’ ‘한국헌법론’ ‘헌법소송법론’ 등 다수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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