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당장 입고 싶어요”… 쇼 끝나자마자 세계 어디서든 바로 구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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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간) 밀라노 패션위크 첫날 열린 ‘구찌’의 2017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 현장. 핑크빛 조명과 안개 효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소셜 미디어에는 패션쇼 초청장부터 옷의 장식 하나하나까지 쇼의 모든 것을 찍은 사진이 쏟아졌다. 구찌 제공
21일(현지시간) 밀라노 패션위크 첫날 열린 ‘구찌’의 2017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 현장. 핑크빛 조명과 안개 효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소셜 미디어에는 패션쇼 초청장부터 옷의 장식 하나하나까지 쇼의 모든 것을 찍은 사진이 쏟아졌다. 구찌 제공
 패션이 산업화되면서 패션위크라는 축제이자 비즈니스의 현장으로 탈바꿈됐다. 쇼를 보고 바이어들은 물건을 주문하고, 디자이너는 주문에 따라 옷을 생산한다. 일부 국내외 중저가 패션 브랜드는 반응이 좋았던 유명 컬렉션을 보고 살짝 ‘카피’하며 ‘트렌드를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는 게 관행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등장하면서 패션위크의 풍경이 달라졌다. 6개월 뒤 언론과 매장을 통해 어렵게 접했던 컬렉션은 이제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유명 패션 블로거, 인스타그래머들은 언론보다 더 빨리 패션위크 소식을 전했다.

 그걸 본 소비자들은 답답했다. “왜 지금 못 사는 거지? 당장 입고 싶은데.”

 버버리는 올해 2월 이 질문에 대해 ‘기다릴 필요가 없다’라고 답했다. 패션쇼 시점과 판매시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여성복과 남성복 컬렉션을 합쳐 1년에 2번만 패션쇼를 열고, 패션위크의 계절을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당장 팔 제품을 쇼에 올리기로 한 것이다. 

 크리스토퍼 베일리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총괄책임자(CCC) 및 최고경영자(CEO)는 이에 대해 “버버리의 새로운 변화는 우리가 패션쇼를 만드는 경험과 사람들이 그 결과물을 경험하는 순간을 가깝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지금까지 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생중계에서부터 런웨이 현장 판매까지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다”고 말했다. 

 버버리가 시작하자 다른 패션 하우스들도 ‘변화’라는 답을 내놨다. ‘톰포드’, ‘토미힐피거’까지 ‘2017 봄여름 패션’이 아닌 ‘9월 컬렉션’을 내놓았다. 쇼가 끝난 뒤 당장 매장에서도 선보였다. ‘마이테레사’와 같은 명품 온라인 사이트는 ‘쇼와 숍(show and shop)’ 코너를 만들어 클릭 한 번으로 방금 런던 뉴욕에서 열린 패션쇼 룩을 살 수 있도록 했다.



‘인스타에 올릴 만한(instagrammable) 순간’

 최근 패션위크의 변화의 중심에는 ‘스트리트’도 있다. 4, 5년 전부터 패션쇼장 밖 거리는 쇼장 안 못지않게 중요한 무대가 됐다. 유명인사나 블로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트렌드를 장착하고, 이를 수많은 사진작가가 렌즈에 담는다. 이들이 눈길을 끌 만한 사진을 SNS, 특히 인스타그램에 실시간으로 올리면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무대다.

 옷 잘 입는 사람-사진작가-SNS의 연결고리 속에서 스타가 된 블로거나 에디터를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삼각관계’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Instagrammable) 옷차림으로 패션위크를 누빈다. 

 이탈리아 패션 블로거이자 디자이너인 키아라 페라니는 이미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녀는 세계를 누비며 각종 패션 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빛낸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660만 명이 넘는다. 2009년 패션 블로그 ‘더 블론드 샐러드(The Blonde Salad)’를 만들어 즉각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2010년에 신발 회사를 차렸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그녀의 수입은 800만 달러(약 88억2800만 원)에 달하며 이 중 70%가 신발 사업에서 나온다. 페라니는 지난해 포브스 선정 예술 및 스타일 분야의 성공한 30세 이하 30인에 꼽혔다.

 올해 패션위크에서도 여전히 그녀가 나타나면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이자벨 마랑의 데님 블라우스에 생로랑의 페이턴트 소재 스커트를 매치한 그녀는 믹스&매치의 귀재로 떠올랐다. 과감한 룩을 시도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어 그녀의 패션은 늘 신선하다.

 미국의 에바 첸은 패셔너블한 워킹맘의 롤 모델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미국 패션지 ‘러키’의 편집장을 거쳐 현재 인스타그램 패션 파트너십 총괄로 일하고 있는 화려한 커리어의 소유자다. 올해 4월 서울에서 열린 ‘2016 콘데나스 럭셔리 콘퍼런스’에 강연자로 방한하기도 했다.

 그녀는 패션 에디터 시절부터 친숙한 글과 독특한 포즈로 팔로어 수를 죽죽 늘려 나갔다. 당연히 패션 센스도 만점이다. 첸이 고안한 ‘에바 첸 포즈’는 너무나 유명하다. 뉴욕에 사는 그녀는 출근길 택시 뒷좌석에서 그날 신은 신발과 가방, 과일 하나를 놓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해시태그 ‘#evachenpose’와 함께.

 최근 둘째 임신 소식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린 첸은 뉴욕에서 시작해 런던, 밀라노 그리고 이제 파리 패션위크를 향해 세계를 누비는 중이다. 그녀가 밀라노에서 ‘구찌’ 패션쇼를 마친 후 입어 봤다며 올린 ‘해파리 코트’, 임신한 배를 아름답게 보여준 ‘프로엔자 스쿨러’의 레드 니트 드레스가 화제를 모았다.

 모델 포스 페라니와 엘리트 커리어우먼 첸의 공통점은 친숙함이다. SNS를 통해 틈틈이 자신의 일상을 알리는 그들은 패션위크와 값비싼 명품 옷마저 친숙한 무언가로 바꿔놓는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소비자들이 ‘나도 저렇게 입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SNS의 위력은 패션쇼 안의 풍경도 바꿔놓는다.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될만한 퍼포먼스, 무대 장치가 날로 진화 중이다. ‘돌체앤가바나’는 최근 전문 댄서들이 런웨이에서 춤을 추며 오프닝을 장식했다. ‘구찌’는 핑크색 조명과 담배 연기 같은 안개 효과로 신비로움을 연출했다.

 뉴욕타임스는 올 초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남성 패션(Instagrammble Men′s fashion)’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파리 패션위크에서 5일을 지내보니 누가 뭐래도 성공의 키는 소셜미디어라는 걸 알겠다”며 “런웨이의 모델조차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고 보도했다. 소셜미디어가 패션위크, 나아가 패션계를 흔들고 있다는 얘기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패션#버버리#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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