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증언 최초보도’ 日기자 “아베정권 바뀌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6일 15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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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11일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최초로 보도한 일본 기자가 있었다. 3일 후 증언을 했던 여성은 김학순이라는 실명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오는 물꼬가 트인 것이다. 일본 기자는 그 해 12월 김 할머니의 한스러운 삶과 일본 정부를 제소한 사실에 대해 기사를 썼다.

32년간의 기자 생활을 마친 일본 기자는 일본 고베의 한 여대 교수로 임용될 예정이었다. 자신의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다는 소망이 이뤄지는 듯 했다.

하지만 악몽 같은 현실이 시작됐다. 2014년 1월 일본 주간지인 슈칸분슌(週刊文春)에 과거 위안부 기사를 쓴 사실이 보도되면서 일본 우익들의 협박이 시작된 것. 이들은 대학에 어마어마한 양의 협박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결국 임용이 취소됐다. 그는 물론 한국인 아내, 10대인 딸 역시 온갖 협박과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우에무라 다카시 씨(58)의 이야기다.

일본 우익은 우에무라 씨가 정신대를 위안부로 표기했고, 양아버지가 위안부로 팔았음에도 강제 연행된 것처럼 기사를 썼다며 그를 '날조 기자'로 몰아붙였다. 당시에는 정신대를 위안부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했고 '전쟁터에 연행되었다', '속아서 위안부가 됐다'고 썼을 뿐이었다.

우메무라 씨가 강사로 있던 대학에까지 우익들의 협박이 집요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 나서 그를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가톨릭대에서 초빙교수직을 제안했고, 올해 3월부터 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담은 책이 올해 초 일본에서 출간됐고 최근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에무라 씨와 나눴던 질의 응답을 정리했다.


―한국어판 책을 출간한 소감은?

"일본에서는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 한국어판은 연표 등 관련자료의 양이 더 많다. 내가 왜 그렇게 일본에서 공격받아야 하는지 너무 황당하다.

1991년 8월 정신대 이름으로 전장에 갔다고 기사를 썼다. 당시 위안부를 정신대라고 쓴 건 한국, 일본 여러 매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우익은 내가 쓴 기사에 대해서만 '정신대는 위안부와 다르다'고 공격했다. 일본의 리버럴한 언론사(아사히신문) 저널리스트로서 공격받은 것이다.

날조 기자란 말은 기자에게 사형 선고다. 없는 사실을 조작하는 게 날조다. 날조 기자라면 해직돼야 하는데 아사히신문은 내 기사를 인정했다. 날조기자란 말은 그냥 욕이 아니라 내 기자 인생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말이다.

뉴욕타임즈,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같은 유력 일간지들이 나에 대해 보도했다. 날조 기자라면 어떻게 보도를 할 수가 있었겠는가. 가톨릭대에서도 어떻게 날조 기자에게 수업을 맡기겠는가. 이건 나 자신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일본 언론의 자유, 위안부의 인권을 공격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끝까지 싸우려 한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딸이 협박받았을 때였다. 딸은 내가 기사를 쓴 한참 뒤인 1997년에 태어났다. 아무 죄도 없는 딸의 얼굴 사진을 인터넷에 실어 비방하는가 하면 이지메를 하라고 부추기고 심지어는 자살하라는 말까지 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딸이 강하게 견뎌 줘서 오히려 내가 용기를 얻었다. 딸을 협박한 남성에 대해 지난달에는 도쿄지방법원이 '미성년자에 대한 악질적인 인격공격'이라며 170만 엔(약18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딸이 재판에서 이겼듯이 나도 이길 것이다."

―소송비용이 만만치 않을텐데….

"변호사와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된 170명의 변호인단이 꾸려져 무료로 변호를 해준다. 내가 공격을 받는 건 일본에서 언론의 자유가 없어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원자들이 기금을 모았고, 개인 돈도 쓰고 있다."

―협박은 여전한가.

"가톨릭대를 협박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인터넷에는 아직까지 많은 협박글이 남아 있지만. 일본의 여러 대학과 시민단체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해 미국 프린스턴대, 뉴욕대, 시카고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등에서 강연했다. 올해 4월에 유엔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조사하는 분이 나를 인터뷰 했고 보고서도 나왔다. 국제 사회가 관심을 많이 가져주고 있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아직 있지만 상황은 예전보다 좋아졌고 앞으로 차츰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한 아사히신문의 태도는 어떤가?

"아사히신문은 위안부 문제를 열심히 보도했지만 요즘은 많이 쓰지 않고 있다. 여러 사안으로 공격을 많이 받아서 위축된 측면도 있다. 아사히신문 기자들도 옛날에 비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많이 안 가지는 것 같다. 한 기자는 '위안부 기사를 쓰고 우에무라 씨처럼 될까봐 무섭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나를 공격해 언론 자유를 압박하려는 우익의 노력은 성공했다.

하지만 올해 여름에 규슈나 홋카이도 나고야 등에 강연하러 간 내용이 아사히신문에 났다. 퇴직 후 우익의 공격으로 대학 임용이 취소되자 아사히신문에서 복귀하라고 제안도 했지만 내가 정중히 거절했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 선후배들이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모아 활동비로 쓰라고 보내주고 있다."

―기자 시절 위안부 보도에 일정 부분 거리를 뒀다고 했는데 이유가 뭔가?

"1990년대는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왔다. 나는 그 때 다른 곳에서 특파원을 하고 있었다. 또 아내가 한국인이고 장모가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간부여서 내가 위안부 기사를 쓰면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다고 할까봐 거리를 둔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요즘 일본에서는 위안부 문제 보도를 별로 안 하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위안부는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다. 이번 일 역시 내 문제가 아니라 용기를 내 증언한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다."

―아베 정권이 바뀌면 일본의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베 정권 때문에 역사에 대한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다. 역사를 모르니까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고노담화의 정신은 계승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말고 인류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결코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합의에는 고노 담화 같은 내용도 있어서 한일 양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에 보니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한 것이었다. 돈만 내면 문제가 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위안부 합의는 끝이 아니라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한 시작점이 돼야 한다. 일본 교과서에도 나오고 젊은 세대도 그 기억을 계승해야 한다."

―한국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일본에는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책에는 나를 돕는 시민단체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980년대 후반 연세대 어학당을 다녔고 1990년대 서울특파원을 지냈다. 앞으로 일본과 한국이 화해하고 평화롭게 교류할 수 있도록 두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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